전국여행 * 문화탐방/서울♡인천

덕수궁(德壽宮)

자즐보 2016. 5. 8. 21:49

2016년 5월 6일

 

덕수궁(德壽宮)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소재 / 사적 제124호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것으로 조선말 고종이 살던 곳이다.

궁궐의 자리는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직후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행궁이 되었다.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한 뒤 1611년 10월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615년(광해군 7)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 궁궐이 되었으며 1618년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면서 서궁으로 불렸다. 인조는 이곳 별당에서 즉위했으나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다시 빈 궁궐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왕태후와 왕태자비가 이곳으로 옮겨와 생활했으며

1897년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궁궐 건물을

건립하고,  9월 17일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하고 소공동의 원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정궁이 되었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고 이곳에 살면서 덕수궁이라고 했다.

순종이 이곳의 즉조당에서 즉위하였고, 1910년 근대건물인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전이

건립되었으며, 1919년 고종이 함령전에서 죽었다.

 

건물의 배치는 중앙에 정전인 중화전이 남향하여 있고

정전의 뒷편에는 석어당과 즉조당이 있으며, 정전의 동편에 침전인 함령전이 있다.

함령전의 서쪽에 덕홍전이 있으며, 북쪽에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이 있다.

정문인 대한문은 궁궐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전인 중화전의 주위에 회랑이 없어

다른 궁궐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현재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하여

중화문·함령전·즉조당·준명당·석어당·덕홍전과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과 정관헌 등이 남아 있다.

 

서양식으로 세워진 석조전과 정관헌은 주변의 한식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건축양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특히 석조전의 남쪽에 일본인들이 미술관을 세우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을 만들면서 궁궐의 본래 모습이 상당히 손상되었다.

(자료출처 : 다음 백과사전)

 

 

대한문(大漢門)

1611년(광해군 3)에는 이 행궁을 ‘경운궁(慶運宮)’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1914년 도로를 건설한다는 이유로 문 오른쪽에 있던 건물 및 담장이

모두 일제에 의하여 크게 파괴되었고, 이때 대한문도 궁 안쪽으로 옮겨졌다.

또한 1970년에 도시계획으로 다시 이곳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수궁 안내도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

 

 

 

 

중화문(中和門)

중화전과 함께 재건된 중화문은 경운궁의 중문이자 중화전의 정문이다.

당초에는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6년 중화전이 단층으로 축소 재건될 때

함께 단층으로 지어졌다. 전을 깐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중앙열 세 칸에 모두 판문을 달았다.

 

 

 

중화전(中和殿) 일원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으로 정전은 즉조당 이었는데

1902년 중화전을 건축하여 궁궐의 중심 영역으로 삼았다. 중화전 영역 주위에는

장방형으로 2칸 폭의 행랑이 둘러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동남쪽 모퉁이에 일부만 남아 있다.

 

 

 

 

 

즉조당(卽祚堂) 일원

선조가 거처했던 전걱들을 보존한 곳으로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 해 다시 지은것이다.

 

 

준명당(浚明堂), 고종이 업무를 보던 공간으로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즉조당(卽祚堂), 광해군괴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

 

 

준명당 & 즉조당

 

 

석어당(昔御堂)

임진왜란시 의주로 피난갔던 선조가 한양에 돌아와 임시로 거쳐하던 곳으로,

1904년 화재로 원래 건물은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90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정전(正殿)인 중화전(中和殿)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으며, 선조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1층은 정면 8칸 측면 3칸, 2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의 굴도리집이다.

 

 

 

정관헌(靜觀軒)

한국과 서양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궁궐 후원의 언덕 위에 1900년 건립,

고종이 휴식을 하며 외교사절과 연회를 하던 곳이다.

 

 

 

 

덕홍전(德弘殿)

고종황제가 오국사신을 접견할 목적으로 지은 전각 

1911년 건립되어 현존 전각 중에 가장 나중에 건조된 것으로

외부는 한옥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몄다.

 

 

함녕전(咸寧殿, 보물 제820호)

함녕전1897년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정면 9칸, 측면 4칸에

한쪽 후면 4칸이 더 붙은 'ㄱ' 자형을 하고 있으며, 익공으로 결구된 간결한 건물이다.

순종이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옮기자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寢殿)이다.

 

 

 

 

 

광명문(光明門)

광명문은 침전인 함녕전의 남쪽 대문이었으나

1938년 석조전 서관을 증축하면서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자격루(국보 제229호)

 

 

1462년 제작된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

 

 

화약을 이용하여 100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신기전기화차

 

 

 

옛 덕수궁 건물 부재

 

 

 

석조전(石造殿) 일원

 

 

덕수궁미술관

  건물은 1933년 덕수궁이 일반에게 공개된 이후 황실이 조선미술전람회의

일환으로 조선미술품을 진열할 수 있는 박물관을 짓기로 결정한 결과 설립되었다.

1936년 8월 21일 기공하여 1938년 2월에 완성, 광복 후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유엔 국제연합한국위원단이 사용하였다. 1954년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73년 7월 부터 1986년 8월 까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후 국립국어연구원이 입주하여 사용하다가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개관하고

2002년 5월 7일 덕수궁미술관으로 정식 직제화되었다.

 

 

앙부일구(보물 제845호)

 

 

 

석조전(石造殿)

덕수궁 안에 있는 근대 서양식 건물로 영국인 J.M. 브라운의 발의에 의해

1900년 착공하여 1910년 완공되었다. 3층 석조건물로 1층에는 거실, 2층에는 접견실 및 홀,

3층에는 황제 황후의 침실·담화실·거실·욕실 등이 있다.  

건물 앞의 정원과 함께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의 건축을 모방해 지은 것이다.

1945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되었으며 6·25전쟁 이후 1986년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선원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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