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여행 * 문화탐방/서울♡인천

창경궁(昌慶宮)

자즐보 2016. 5. 8. 22:24

2016년 5월 6일

 

 

창경궁 (昌慶宮)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소재 / 사적 제123호 

 

창경궁은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이다.

이후 성종 임금 대로 와서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짓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창경궁에는 아픈 사연이 많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적이 있고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화를 입었다. 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 뜰에 묻혀있다.

창경궁은 일제시대에 일제에 의하여 창경원이라 격하되고 동물원으로 탈바꿈 했었으나,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온 겨레의 노력으로 1987년부터 그 옛날 본래 궁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홍화문, 명정전(조선 왕조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임), 통명전, 양화당, 춘당지 등이 있으며

구름다리를 통하여 종묘와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다.(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홍화문(弘化門, 보물 제384호)

창경궁의 정문으로 동향으로 세워져 있다.1484년 건립되어

임진왜란 때 불탄것을 1616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창경궁 안내도

 

 

옥천교(보물 제386호)

1484년(성종 15)에 세운 것으로 길이 990cm, 폭 660cm의 화강암 다리이다. 

궁궐의 정문인 홍화문과 명정전의 정문인 명정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532년 전에 만든 다리를 건너는 것만도 감개무량이다^*^

 

 

옥천교를 건너와서 본 홍화문

 

 

창경궁의 전각은 영건, 화재, 훼손 등으로 인하여 변화하였으며,

변화에 따라 크게 다섯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성종 때 세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 터를 확장하여 별궁을 세운 시기이다.

명정전을 정전으로 하여 편전인 문정전, 침전인 수령전 그리고 환경전, 경춘전,

인양전, 통명전, 양화당, 여휘당, 사성각 등을 이 시기에 영건하였다

.

둘째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시작하여 광해군 때에 이루어진 1차 중건 시기이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던 것을 명정전, 문정전, 환경전, 인양전등의 중심 전각들을 위주로 중건하였다

.

세째 시기는 인조반정과 인조 2년(1624)에 일어난 ‘이괄의 난’으로 인해 내전의 전각들이

대부분 소실된 것을 인조 11년(1633)부터 중수하였다.

 

네째 시기는 순조 30년(1830)에 일어난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의 대부분이 소실된 때부터

순조 34년(1834)에 창경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다섯째는 일제강점기에 들어 많은 전각들이 헐리거나 일제에 의해 훼손과 변형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1907년부터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昌慶園)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부분에 도로를 개설하여

맥을 끊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명정전(明政殿) 일원

창경궁의 중심 전각이 있는 곳으로 명정문과 행각, 명정전이 있다.

 

 

명정문 및 행각(보물 제385호)

명정문은 창경궁 외전의 중문이며 행각은 문의 좌우로 연결되는 회랑이다.

1484년(성종 15년) 창경궁 건립 당시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중건했다. 회랑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어 1986년에 복원했다.

 

 

 

창경궁 명정전은 사방이 행각과 월랑(月廊 : 행랑)으로 둘러 조정(朝庭)을 마련하고

마당에는 장방형으로 다듬은 판석(板石)을 깐 다음 한복판에 어도(御道)를 만들었다.

어도 좌우에는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을 배열하여 정전 외부공간에 위계적 질서를 갖추었다.

 

 

 

명정전(明政殿, 국보 제 226호)

 

 

1484년(성종 15)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곳은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었던 곳으로

1544년 인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복원되어 현재에 이른다.

 

 

 

 

명정전 오른편에는 문정전(文政殿)이 연결되어 있다.

 

 

 

문정전(文政殿) 일원 

 

 

문정문(文政門), 문정전의 출입문

 

 

문정전(文政殿)

왕의 집무실인 편전. 사도세자가 아버지인 영조에게 뒤주에 갇혀 죽은 곳이기도 하다.

 명정전은 동향인데 문정전은 남향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헐린것을 1986년 복원한 것이다.

 

 

 

 

숭문당(崇文堂)

창경궁 창건 당시에는 숭문당이라는 건물이 없었고,

광해군 때 궁을 중건하면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왕이 신하들과 국사와 학문을 논하던 경연장소로 사용되었으며,

1830년 화재로 소실되어 그 해 가을에 다시 지은것이다.

숭문당 현판의 글씨는 영조의 어필이다.

 

 

명정전과 후전(後殿)으로 연결된 행각

 

 

빈양문(賓陽門)

빈양문은 치조공간(외전)과 연조공간(내전)을 연결하는

통로의 개폐 기능을 갖는 문으로 명정전의 뒷면 중앙과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문을 나서면 바로 내전으로 들어서게 되어 북쪽으로 함인정, 경춘전, 환경전이 눈에 들어온다.

 

 

 

숭문당 · 함인정

 

 

 

숭문당 후면

 

 

 

 

함인정(涵仁亭)

이곳에는 원래 1484년(성종 15)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1633년(인조 11)에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건하여 함인정이라 한 것이다.

이곳은 특히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경춘전 · 환경전

 

 

경춘전(景春殿)

이 전각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에 재건하였고, 1830년(순조 30)에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른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환경전(歡慶殿)

이 건물은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에 중건하였다. 1830년(순조 30)의 화재로 소실되어

1834년에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이곳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춘헌 · 집복헌

이 일대는 후궁들의 처소가 밀집된 영역이다.

 

 

 

영춘헌(迎春軒)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의 서행각으로 초창 연대는 알 수 없다.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거처하다가 1800년(재위24년) 6월 승하하였다.

순조 30년(1830) 8월 1일 오전 화재가 발생하여 환경전, 경춘전등과 함께 소실되어

순조 34년 장남궁을 헐어다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영춘헌은 본채 5칸이 남향하여 ㅡ자형을 이루고 본채의 좌우와 뒷면으로는

행각이 둘러져 있어 ㅁ자형을 이루었으며 서쪽으로 ㅁ자형의 행각이 이어져 맞붙어 있다.

 

 

 

 

 

 

풍기대(보물 제846호) · 앙부일구(보물 제845호)

 

 

 

 

통명전 · 양화당

 

 

양화당(養和堂)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하였으며,

고종 15년(1878) 철종비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通明殿, 보물 제818호)

통명전은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 때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1834)에 중건된 것이다.

 

 

양화당, 통명전의 후면

 

 

 

 

 

 

 

 

 

창덕궁으로 통하는 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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