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봉화군

봉화 당성사 & 연주정

자즐보 2011. 7. 3. 19:08

 

 

 

당성사(唐城祠)

 

봉계 홍세공의 집으로 현재는 그 후손이 살고 있다. 

 

봉계(鳳溪) 홍세공(洪世恭,1541(중종36)~1598(선조31))은 조선의 문신으로

1567년(명종22) 생원이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 순찰사가 되고,

이듬해 전주부윤에 이어 1594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그후 평안도 조도사로서 군량미 조달에 힘쓰다가 재임중에 죽었으며,

영의정에 추증(追贈),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명부대(明夫臺)

조선 개국공신이신,집현전 대제학 문경공 홍길민(1353~1407년)께서,

이태조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셨으나 명나라에서 조선을 승인하지 않는지라

이태조를 도우려, 문경공께서 명나라 황제를 찾아가 순망치한의

이치를 설명하여(입술이없으면이가시리다는) 조선의 국새를 받아 오시고,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잘 설득한 공로로, 명나라 황제로 부터 "조선의 사람이기도하지만,

명나라의 지아비가 함이 옳겠다"하여 명부(明夫)라는字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문경공의 정자를 일러 明夫臺라 하며, 당성사 뒷산에 있다. 

 

 

충의문 

 

 

중랑장남양홍공후지비 

 

 

태사묘

 

 

 

정려각 

증,정경부인고령박씨지비

 

 

 

 

증,영의정남양홍공세공지비 

 

 

 

 

연주정(戀主亭)

고현춘양[古縣春陽]이라고 하는 춘양면으로 편입이 된 소로리의 방전부락에는

멀리 백두대간의 구룡산에서 발원을 하게 되는 운곡천이 뱀이 기어가는 모습으로 흐르게 되는

사행천이 열두도심과 열두춘양이라고 하는 곳을 지나고,억지춘양이라고 하는 말을 만들고는

수구가 되는 춘양구곡의 일곡이라고 하는 적연[笛淵]으로 흐르게 되고,

영동선 철로가 지나가게 되는 곳에 조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만들게 되었으니

홀로 솟은 봉우리라고 하여 독봉,독산이라고도 하고,삼척으로 가게 되는 길가에 있다고 하여

삼척봉으로 불리게 되는 모습에 범상하지 않는 모습으로 흐르게 되는 운곡천과 이루게 되는

경치가 일품으로 많은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게 되는 모습으로 이 산을 등지게 되는

양지쪽에는 아담하게 지어진 정자가 있으니 연주정[戀主亭]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내노라 하는 삼한갑족인 남양홍씨들의 정자로서 그들의 훌륭한 조상을 기리게 되는

제사와 많은 비석들이 세워지게 되는 제단으로서 해마다 홍씨들의 불천위 조상의

제례를 모시게 되고,조상의 유덕을 추모를 하게 되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자의 이름을 연주정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은 유래가 있을 것이나 알 수 없고,

연주[戀主]라고 하는 의미는 남을 그리게 된다는 뜻으로 아마도 나라님인 임금을 그리게 되는

마음을 두고,나라에 충성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의미로서 정자의 이름을

정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양(당성) 홍씨

시조 홍천하는 고구려 27대 왕인 영유왕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학과 문화를 혁신시켰다. 신라 27대왕인 선덕여왕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세워 당성(남양)백에 봉해졌고 태자태사가 되었으며

본관을 당성으로 하였다. 당성이 후에 남양으로 지명이 바뀌어

본관을 남양으로 하고있다.


그리고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을 중시조로 1세 조상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홍은열은 원래 이름이 홍유(儒)이었는데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태조가

"은(殷)나라 부열(傅說 : 중국 은나라 고종 때의 명재상)과 같다."며

이름을 은열로 하사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