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닭실마을
봉화 닭실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즉 '금계포란'의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풍수지리상 영남의 4대 길지중 하나로 꼽히는 명당자리이다.
닭실마을의 행정 지명은 유곡리이지만 '닭실마을'이 더 많이 알려진 이름이고,
그보다 더 많이 알려진 이름이 바로 한과마을이다.
닭실한과는 전량 주문 생산을 하고 있는데, 명절등 성수기에는
주문량을 맞추지 못해 일찍 주문 접수를 마감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또한 닭실마을은 안동권씨의 집성촌으로 입향조는 충재 권벌로 알려져 있으나,
실지 이마을에 제일먼저 정착한 이는 권벌의 5대조이다.
충재 권벌 이후로 마을이 번성하여 그를 입향조로 알고 있는이가 많아진 것이다.
충절세향 닭실마을 입구
닭실한과 만드는 곳...
충재 권벌 종가
조선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충재 종가
위풍당당한 선비와 같이 서 있는 솟을대문, 월문(月門)이라고도 한다.
정면4칸,측면2칸의 사랑채
종부께서 살고 계시는 안채는 중문을 통해
살짝 엿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충재 종택에는 5개의 서책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262호 근사록, 261호 충재일기, 보물 896호 중종에게 하사 받은 책들,
901호 호적단자, 902호 서첩과 글씨 인데, 책을 좋아 했던 선비의 종택에 어울리는 보물이 아닐런지...
종가의 사당...
청암정(靑巖亭)
닭실마을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찾는 곳은 청암정이며,
종택에 딸린 정자로 연못 한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지어져 있다.
이 곳은 영화 (음란서생), 드라마 (동이),(스캔들),
(바람의 화원) 촬영지이기도 하다.
청암정이 있는 바위가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이다.
처음 정자를 지을 때 청암정의 안쪽방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지나던 고승이 (거북의 등에 불을 피워서는 않되고 물이 있어야 산다)고 하여
방에 온돌을 없애고 바위 둘레를 파서 인공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자에는 퇴계 이황,백담 구봉령, 관원 박계현, 번암 채제공,
눌은 이광정 등 당대 명현들의 글이 현판에 새겨져 걸려 있다.
또한 청암정 현판은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의 글씨이며,
"청암수석(靑巖水石)" 현판은 미수 허목의 글씨이다.
퇴계 이황선생 글
석천정사(石泉精舍)
석천정사는 충재 권벌 선생의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세운 정자이다.
권동보는 중종 37년인 1542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명종 2년인 1547년에 '양재역벽서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아버지가 삭주로 유배되어 1년 만에 죽자, 관직을 버리고 20년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 돌아와
전원의 계곡 위에 석천정사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봉화 내성천으로 흘러드는 석천계곡은 아름다운 너럭바위와 울창한 솔숲이 정말 비경이다.
이 곳에는 큰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 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당시 유생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밤이면 도깨비가 나타나 유생들이 자꾸 줄게되었다.
이에 한 명필이 입춘날에 바위에 "靑霞洞天"이라고 글을 새긴 후부터
도깨비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청암정과 석천계곡은 명승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천정사가 있는 곳은 "석천계곡"으로
봉화를 가로 질러 흐르는 내성천의 지류인 맑은 계곡물과
널직한 너럭바위, 송림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우며,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즐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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