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 안보

김두한 & 시라소니

자즐보 2016. 6. 20. 15:33

 

▼ 주먹의 황제 김두한(1918-1972년)

서울 교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나 다름없는 부랑아생활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민족항일기 말기에는 종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주먹왕으로 군림하면서

‘김좌진장군’의 아들임을 긍지로 삼아 일제의 무기고를 폭파하거나 조선인 상인을 보호하는 등

협객으로도 행동하였다. 광복 이후 이승만·김구·신익희 등이 주도하는 대한청년단의

감찰부장을 맡아 반공대열의 최선봉에서 활약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최고위원, 대한학도의용군 참모장 등을 역임하면서

반공·노동운동을 계속하였다. 1954년 서울 종로을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었고, 1965년에도 제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는 등

정치사에도 행적을 남겼다. 용산구의 보궐선거로 제6대 국회에 등단하자마자

한독당 내란음모사건과 관련되어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으나 여·야 국회의원들의

석방결의안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사카린밀수사건을 논란중일 때

국무위원에게 똥물을 뒤집어씌운, 이른바 ‘국회오물투척사건’으로

의정사상 전대미문의 오점을 남기고 다시 서대문감옥에 수감되는 기이한 행적을 남겼다.

결국 1966년 의원직을 사퇴함으로써 그의 독특한 정치생활은 막을 내렸다.

계은퇴 후 고혈압으로 1972년 11월 타계하였다.(자료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 주먹의 황제 김두한

 

 

 

 

 

김두한의 가족들(가운데 딸 김을동)

 

 

김두한의 결혼식 사진

 

 

민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김두한

 

 

 

박정희 소장과 함께  

 

 

 그 당시 우미관 식구들

 

 

 

▼ 시라소니 이성순(1916-1983년)

1916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전주이씨 가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계가 기울자 17세부터 신의주와 만주 사이를 오가는 기차에서 밀수로 생계를 유지했고,

시라소니라는 별칭으로 불린 대한민국협객으로

해방 정국에서 서북청년단 감찰부장을 맡았고 독립운동가 신익희의 경호실장을 맡았다.

만화가 방학기가 쓴 만화책으로 다수 일화가 소개되었다.(자료출처:위키백과)

 

이 사람이 바로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

 

 

 

 

 

 

정치 깡패 이정재 (군사재판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 

 

 

 

'시라소니는 진짜 싸움을 잘했을까.'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조상구 역)는 '전설적인 파이터'로 등장한다. 호랑이 새끼 중 못난 놈이라는 의미의 독특한 별명을 지닌 시라소니(본명 이성순·1916∼1983). 어미가 버린 새끼 중 살아남은 시라소니는 천하무적이 된다고 한다.

시라소니의 아들 이의현씨(44·목사)는 "아버지는 주먹과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타고난 싸움꾼이다"고 회고했다. 김두한의 평생지기 김동회옹(86)도 시라소니에 대해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 김옹은 현존하는 야인 중 시라소니와 맞장을 뜬 유일한 인물이다.

김옹은 1949년 겨울쯤 서울 명동극장 인근 공터에서 시라소니와 맞장을 떴다. 당시 김옹은 김두한과 함께 명동극장 옆 맥주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옹은 술자리에서 이북사투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리자 시라소니 일행에게 "야! 조용히 술 마셔"라며 시비를 걸었다. 순간 시라소니가 "야, 뭐 어드레!"라며 고개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라소니는 약자가 건드리면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김옹은 약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와 눈빛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싸움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두한은 두사람이 싸울 것 같아 말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김옹이 "한판 붙자"며 대결을 신청했다. 시라소니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서로를 탐색했다. 김옹은 시라소니가 뛰어난 싸움꾼으로 소문나 있어 사전에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시라소니의 주특기인 '공중걸이 박치기'만 피한다면 승산있는 싸움으로 판단했다.

반면 시라소니는 김옹의 싸움 실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당시 두 사람의 싸움은 유도가 주특기인 김옹과 공중걸이 박치기가 주특기였던 시라소니와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10여분 동안 한치의 양보도 없는 피말리는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지존을 가리지 못했다.

김두한의 중재로 싸움을 중단한 두 사람은 다시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화해했다. 김옹은 "시라소니가 워낙 유명한 싸움꾼이어서 결투를 벌이고 싶어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면서 "시라소니는 정말 대단한 싸움꾼이었다"고 회고했다. 김두한도 말로만 듣던 시라소니의 싸움 실력을 두 사람의 결투를 통해 본 후 시라소니를 주먹 선배로 극진히 모셨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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