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들

조선통신사절단

자즐보 2015. 10. 29. 11:42

조선통신사절단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일본의 막부(幕府) 최고권력자인

쇼군(將軍)에게 보낸 외교사절이다.

 

조선이 1403년(태종 3) 명나라로 부터 책봉을 받고, 이듬해 일본의 아시카가 요시미쓰 쇼군도

책봉을 받게되자 조선과 일본은 대등한 교린국(交隣國)이 되었다.

 

일본 쇼군이 조선에 파견한 외교사절은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했다.

통신사는 "국가 간에 신의를 통하는 사절'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새 쇼군이 자리에 오르면 축하사절 명목으로 파견했고, 양국간 외교 현안 해결과

정세 파악도 주임무였다.

 

 

 

조선통신사는 1413년 처음 파견된 후 1811년 까지 400년간 20차례 이어졌다.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官) 등 수뇌부와 수행원·역관·의원·화원 등

500명 전후한 대규모 인원으로 꾸려졌다.

 

통신사는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대마도(쓰시마)를 거쳐

일본 본토에 상륙했다. 이 후 오사카까지 해로를 이용한 뒤 육로로 에도(현,도쿄)까지 갔다.

왕래에 대략 8개월이 걸렸으며 때론 2년이 넘기도 했다.

 

조선통신사의 일본행에는 대마도의 역활이 매우 컸다.

일본의 대(對)조선 외교를 대행했던 대마도는 통신사 실무를 담당하면서

양국 사이에서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조선은 통신사 선발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통신사 일행은 일본 지식인들과

서화, 시문을 교환하는 등 문화교류에 힘썼으며 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 일본 고베시립박물관이 소장한 "조선통신사래조도". 쇼군이 있던 에도(도쿄)에 도착한 조선통신사 일행이

  국서 봉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것이다.

 

조선통신사의 흔적은 일본 곳곳에 지금도 남아있다.

대마도는 통신사가 가장 먼저 일본 땅에 닻을 내린 곳이다.

지금은 부산에서 쾌속선을 타고 1시간 10분이면 닿지만

옛 뱃길은 녹록지 않았다. 파도가 높지 않은 날을 기다려

일행 500여 명이 탄 6척의 배가 바다로 나섰다. 배가 침몰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마도 북부 와니우라에는 이때 희생된 112명을 추도하는 비석이 서 있다.

시모노세키는 통신사 일행이 일본 본토의 땅에 첫 상륙한 곳이다.

일본 내해로 들어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관문격이다.

이곳에도 조선통신사 상륙비가 세워져 있다. 

통신사 일행은 세토 내해를 통해 보름 이상의 뱃길을로 오사카에 도착했다.

이 지역에는 조선통신사의 글씨와 그림 등을 전시한 기념관·박물관이 있다.

 

통신사 일행은 오사카에서 니시혼간지에 머물렀다. 당시엔 1000여 칸의 건물이 있는

대규모 사찰이었지만, 1945년 폭격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고

1964년 재건한 본당과 부속건물이 있다.

 

조선통신사가 왕래했던 400여 년간 조선과 일본은 큰 분쟁없이 대등한 입장에서

평화롭게 교류하던 시대를 실현했었다. (자료출처:조선일보 2015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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