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사(長安寺)
삼계(三界)는 유심(唯心)이요 만법(萬法)은 유식(唯識)이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으니, 금강산과 양산 그리고 이곳 국토의 중간인 용궁 비룡산 장안사이다.
초창주는 신라 경덕왕 때(759) 운명조사이시며, 그 후 고려 명종때의 지도림 화상,
조선 인조 5년(1627) 덕잠대사, 영조 31년(1755) 법림대사 등 고승 대덕들이
주석하시면서 중창하셨다. 근래에는 두타화상(頭咤和尙)이 약관의 나이로
수행정진차 전국을 행각하던 중, 사세의 퇴락함을 보고 지역 신도들과
힘을 모아 오늘의 가람을 일으켰다.(1984~1992)
일찌기 고려의 문인 이규보선생이 장안사에 머무르면서 글을 지었으며,
또한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이 도량에서 원(願)을 성취하고 밖으로 역량을
발휘하기도한 유서깊은 도량이다.
현재 본당(本堂)은 대웅전이며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범종각(梵鐘閣)
대웅전(大雄殿)
삼성각(三聖閣)
주지실로 사용되는 응향전(凝香殿)
순치황제 출가시
순치황제(재위:1643~1661)는 청나라 3대 황제인 세조이다.
황제는 전생에 인도의 수도승으로 있었는데, 그 나라 왕의 폭정에
백성들이 시달리자 수행[선정] 가운데 '나 자신이 왕이었다면 백성을 위하여
왕도로서 정치를 할 것이거늘', 하고 찰나 생각을 한 인과로 중국의 제왕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황제 자리를 버리고 출가를 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중국 3황 5제, 순-우-탕-문무 주공으로 내려와
수-당-송-원-명-청나라로 이어져, 청나라 태조-그 아들 태종-
그 아들 순치황제로 3대에 이어지며 중국이 통일되었다.
순치황제는 나이 어린 6세에 황제에 등극하여
18년 동안 재위하면서, 중국 천하를 통일하였다.
그리고 23세가 되던 해에 황제직을 버리고 홀연히 입산하였다.
이 시는 순치황제가 통일 이후 세상살이를 다 내려 놓고
황제 직위를 버리고 스님이 되기 위하여 출가하면서 산서성
오대산으로 입산하면서 쓴 시(詩)로 스님들의 애송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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