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교(錦川橋) 보물 제1762호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년(태종 11)에 진선문 밖 어구에 설치되었다.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궁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한 축조기술 등이 돋보이는 홍예교(虹霓橋)이다.
금천교 왼편(북쪽)
홍예 사이의 벽에는 귀면형(鬼面形) 벽사상(辟邪像)이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쪽의 홍예 기반석 위에는 거북상이 배치되어 있어서
금천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궐내각사 아래로 흐르게 만든 금천
금천교 오른편(남쪽)
홍예 사이의 벽에는 귀면형(鬼面形) 벽사상(辟邪像)이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쪽의 홍예 기반석 위에는 해태상이 배치되어 있다.
진선문(進善門)
진선문은 창덕궁 창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것을 1996년 행랑으로 연결한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왕에게 바른 말을 올리다"라는 의미로 법전인 인정전으로 들어가기 전
말과 행동을 바로하여 올바른 정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던 신문고가 설치되었던 문이다.
진선문을 들어서면 안쪽 멀리 숙장문까지 좌·우측으로
행랑이 연결되어 있다. 좌측 중앙부분에 인정전 출입문인 인정문이 있다.
인정전 일원 안내도
인정문(仁政門), 보물 제813호
1405년(태종 5)으로 창덕궁 창건 때 지어졌다.
정전(正殿)에 이르는 출입문으로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인정문을 통하여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으로 본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지자 광해군 즉위년에
창덕궁을 재건하면서 다시 세웠는데, 이 건물도 1744년(영조 20)
인접한 승정원에 화재로 좌우행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인 1745년에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정전(仁政殿), 국보 제225호
1405년(태종 5) 창덕궁이 창건되면서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09년(광해군 1)에 재건되었으며, 다시 1803년(순조 3) 소실되었다가
1804년에 중건하였고, 1842년(헌종 8)에 수리가 있었다.
조선왕조 궁궐의 정전(正殿)다운 격식과 의장(意匠)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창덕궁은 오랫동안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역활을 하였으므로,
조정의 각종 의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이 이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인정전 전면에는 행랑으로 둘러싸인 전정(前庭)이 있고
품계석(品階石)이 좌·우로 설치되어 있다. 인정전을 바라보면서
오른쪽(동편)에는 문관, 왼쪽(서편)에는 무관들이 도열한다.
인정전(仁政殿)
용상(龍床)의 어좌(御座)와 그 뒤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의 병풍
인정전 앞 전정과 인정문
방화수를 담는 용기 "드므"
인정전 왼편(동쪽) 행랑에서 선정전 구역으로 나가는 쪽문
선정전 쪽에서 보니 "광범문"(光範門)이라고 편액이 걸려 있다.
창덕궁 제3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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