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독립공원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현저동 101) 소재
이 공원은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한 뒤
1992년 공원으로 개장했다. 조성한지 15년이 지난 2007년 전체적으로
시설물이 노후되고, 연못이나 수목배치가 일본식으로 되어 있어
공원 본래의 역사적 의미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2008년 현상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바탕으로 독립문 주변
1만㎡ 크기의 광장(독립마당)과 노후공원시설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영은문 주초(迎恩門 柱礎), 사적 제33호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1407년(태종 7) 현위치에 모화루를 짖고
1430년(세종 12) 모화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홍살문을 세웠다.
그 후 1536년(중종 31)에 홍살문을 없애고 청기와를 덮은 영조문을 만들었으며
1539년 영은문이라 이름을 고쳤다. 이 초석은 영은문의 기둥을 받쳤던 것이다.
독립문(獨立門), 사적 제32호
갑오개혁(1894~1896년)이후 자주독립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기념 석조물이다. 그러나 외세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내부 왼쪽에 탑위로 오르는 층계 출입문
안쪽에서 본 독립문
송재 서재필선생 상
3·1독립선언 기념탑
구 서울구치소(서대문 형무소), 사적 제324호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불렸다. 해방 후에는 1946년 경성형무소,
1950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그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88년 2월 이곳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해방 후에 지은 건물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수감되었던
일부 옥사와 사형장, 그리고 보안과 청사 및 병사(病舍)등 11개 동만 남았다.
중앙사 등 6개 동만 보존하였다. 특히 제9옥사는 1929년 수감 중이었던
독립운동가들을 강제로 동원해 벽돌을 굽고, 이를 쌓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1923년 축조된 청사 보안과는 감방을 관장하던 곳으로 현재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보존되어 있고, 사형장 후문을 통해 공동묘지까지 연결되는
약 40m의 지하통로도 발굴 복원되었다.
독립관(獨立館)
1407년(태종 7)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지은 모화루를
확장개축하여 1430년(세종 12) 모화관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한말에 이르러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것을
서재필 선생이 독립협회를 세우면서독립관이라 개칭하고
독립운동의 기지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일본넘들은
독립운동 탄압의 일환으로 이 건물을 철거했다.
서울시는 1989년 독립공원 조성을 하면서 독립관을 복원하였다.
순국선열추념탑
일제에 항거하다가 장렬히 순국하신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며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92년 8월 15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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