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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1편:돈화문,궐내각사

자즐보 2014. 12. 16. 00:38

 

 

 

창덕궁(昌德宮)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99(와룡동 2-71) 소재 / 사적 제122호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1623년 인조반정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번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과 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 때 정궁으로 사용한 후 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

정전 공간의 건축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여 높게 하였고,

침전건축은 정전보다 낮고 간결하며, 위락공간인 후원에는

자연지형을 위압하지 않도록 작은 정자각을 많이 세웠다.

 

건물배치에 있어 정궁인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 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 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이

고도의 조화를 표출하고 있으며,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조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궁궐지」, 「창덕궁조영의궤」,

「동궐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1830년경에 그린 「동궐도(국보 제249호)」가

창덕궁의 건물배치와 건물형태를 그림으로 전하고 있으며, 궁궐사와 궁궐건축을

연구 고증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동궐도(東闕圖), 국보 제249호

위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을 했고 가로 576cm 세로 273cm 이며 국보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작연대는 순조 26년에 지어져 순조 30년에 불타버린 환경전이 그려져 있고, 순조 31년에 착공하여

순조 34년에 중건된 통명전과 경복전은 건물이 없어 졌는데 그려져 있는 점을 보아 1826년~1828년경으로

추정한다. 당시 궁 안에 실재하던 모든 전당과 누정, 다리, 담장은 물론 연못, 괴석 등의 조경과 궁궐외곽의

경관까지 정밀하게 그렸다. 이를 통해 당시 화원들의 뛰어난 계화(界畵:자와 같은 보조기구를 써서 정밀히 그림)

기법을 엿볼 수 있다. 동궐도는 그 예술적 가치보다는 궁궐 건물 연구에 더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돈화문(보물 383호), 인정문(보물 813호), 인정전(국보 225호),

대조전(보물 816호), 구선원전(보물 817호), 선정전(보물 814호), 희정당(보물 815호),

향나무(천연기념물 194호), 다래나무(천연기념물 251호)등이 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돈화문(敦化門), 보물 제383호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지금의 돈화문은 1609년(광해군 원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층 문루에 종과 북이 있어 시각을 알려 주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3천원 주고 들어와서 안쪽에서 본 돈화문

 

 

 

돈화문 일원 안내도

 

 

 

창덕궁 회화나무(천연기념물)

돈화문 안마당 좌우에 8그루의 회화나무는

수령이 약 300~400년에 이른 것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창덕궁 세계유산 표지석

 

 

 

창덕궁 안내도

 

 

 

 

궐내각사(闕內各司)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안에 설치되었고

이를 궐내각사라고 한다.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는 예문관 등이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으며

2005년 복원되었다.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어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로 금천이 흐른다.

 

 

 

 

 

규장각 출입문

 

 

규장각(奎章閣), 왕실의 도서관으로 1776년(정조 원년)에 설치되었다.

 

 

검서청 출입문

 

 

검서청(檢書廳)

검서청검서(檢書)들이 입직(入直)을 하던 규장각의 부속 건물이다.

검서는 ‘서적을 점검한다’는 뜻이며 서적을 검토하고 필사하는 일을 가리킨다.

정조가 즉위하던 해인 1776년에 규장각을 건립하고 1779년에 규장각에

검서관(檢書官) 4명을 두었는데 이 검서들이 입직(入直)을 하던 곳이다.

 

 

검서청 서편에서 뒤로 출입하는 협문

 

 

 

규장각 뒤편의 책고(冊庫), 각종 서적들을 보관하는 창고

 

 

검서청 뒤편, 금천 건너편으로 예문관, 내의원 등 건물들이다.

 

 

궐내각사는 금천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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