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의성군

용문정 & 유초각

자즐보 2013. 5. 25. 07:23

 

 

 

용문정(龍門亭)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산 5 소재

 

운곡(雲谷) 이희발(1768~1850) 선생이 전원생활을 즐기며

학문을 닦던 곳으로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금성산 들머리

용문곡(龍門谷)에 위치하고 있다.

 

 

 

 

삼조(三朝)의 명신 형조판서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50)

자는 우문(又文), 호는 운곡(雲谷), 초명은 영발(英發)이며,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자암 이민환의 6대손으로 학성(울산)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15세에 경주 하곡의 남와(南窩) 정동필(鄭東弼) 문하에 들어갔는데, 선생께서 이르기를 “군의 학문은 천성이라 할 수 있으며 반드시 대성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곡에서 고향인 수정암(水淨庵)으로 돌아와서 22세에 성균관시에 합격했으나 친상을 당해 3년의 집상을 마치고 정조 을묘 식년시(1795년)에 급제하였다. 승문원을 거쳐 초계문신으로 특선되어 6년 동안 봉직하였다. 예조, 병조좌랑, 정언, 지평, 장령, 동부승지, 대사간, 병조참판을 거쳤으며 외직으로는 영월부사, 한성좌우윤을 거쳐 형조판서로 벼슬을 마감하였다. 80세에 기로소에 들었는바 정조, 순조, 헌종 삼조를 섬긴 명신이다.
초계문신으로 있을 때 호학(好學)하는 군주 정조의 총애는 남달랐다. 왕이 말하기를 “학문이 깊고 의리가 분명함에 앞으로 기대함이 크다.”고 하였다. 내직에 있을 때는 전정, 군정의 문란함과 매관매직, 과도한 세금과 부역 등을 줄이는 국정쇄신에 관한 상소를 자주 올렸으며 외직으로 있을 때는 탐관오리의 수탈을 막고 학풍을 진작시키는 등 이름 있는 목민관이 되었다. 부임하여 다스리는 고을은 인근 유민(流民)들이 몰려와 항상 호구가 불어나고 사풍(士風)이 일신되었다. 영월부사 때는 봉록을 털어 양사재(養士齋)를 지어 강학에 힘썼는바 이 고을의 학풍을 진작시켰음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검소하고 청렴하여 그 생활은 옆에서 보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이와 같은 행동은 관리의 귀감이 되었는바 82세에 형조판서로 제수되었다.

 

 

유초각(惟肖閣)

이희발 선생의 하사도상(下賜圖像,정조 때의 우수한 초상)이 봉안되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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