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봉화군

창애정 & 창랑정사

자즐보 2013. 3. 20. 01:23

 

 

 

창애정(倉厓亭)

창애정은 창애 이중광(1709∼1778) 선생이 지은 정자이다.

이중광 선생은 영조 18년(1742)에 추천을 받아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사람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연구에 전념하면서

후배를 양성하였다. 창애정은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이며

ㄱ자형 평면을 갖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이중광(李重光) , 1709년(숙종 35)년 ~ 1778년(정조 2)년

본관은 진성. 자는 평중, 호는 창애. 퇴계 이황의 형인 송재 이우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소퇴계’로 불렸던 이동표, 아버지는 이회겸, 어머니는 안동권씨 권벌

6세손 권두인의 딸이다. 숙부가 두릉 이제겸이다.

이중광은 외가인 안동부 춘양현 유곡리(현,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1741년(영조 17) 할아버지 이동표의 음덕에 힘입어 경기전참봉에 제수되었다.

이후 내관직으로 익위사세마를 지냈으며 외관직으로 장릉참봉, 현릉참봉 등을 지냈다.

현릉참봉 재직 중 일을 청렴하게 처리하여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만년에 숙부 이제겸이 터를 잡은 두들기(현,봉화군 법전면 소천리)로 거처를 옮기고

숙부와 밤낮으로 가까이 지내면서 학문과 도를 논하였다. 또 그곳에

창애정(滄厓亭)을 짓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ㄱ자형 건물의 단아 청초함이 청렴한 선비를 보는 듯...

 

 

 

근래에 설치한 창애선생유허비, 창애정과 조화롭지 못하다...

 

 

 

 

 

 

 

창애정 뒤 흰색 화장실이 눈에 가시처럼 무척 거슬린다. ㅉㅉㅉ

 

 

 

창애정 앞을 흐르는 운곡천과 36번 국도

건너편 아래쪽에 숙부 두릉 이제겸의 창랑정사가 있다.

 

 

 

 

창랑정사(滄浪精舍)

 

두릉 이제겸(1683 숙종9년 ∼ 1742 영조18)의 후손들이 이곳 입향조인

이제겸을 추모하기 위하여 1901년(고종38)에 건립하였다.

이제겸의 본관은 진성. 자는 선경·사원, 호는 두릉.

할아버지는 이운익, 아버지는 ‘소퇴계’로 불렸던 이동표이다.

이제겸은 현재의 예천군 유천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1714년(숙종 40)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4년(경종 4) 문과에 급제한 후 동몽교관, 승문원정자를 역임했고 1727년(영조 3)

율봉도찰방이 되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제겸율봉에서

100리쯤 떨어진 증약관이라는 곳에서 말 숫자를 파악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반란군이 율봉에 들어와 숨겨 놓은 역마를 모두 약탈해갔다. 이에 이제겸

도순무사 오명항에게 사태의 전말을 보고하는 한편, 영남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반란이 진압되어 그만두었다.

반란 진압 후 강필신의 무고로 평안도 선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다시 강원도 제천으로 옮겨 3년을 보낸 뒤 1735년 비로소 풀려났고

1741년이 되어서야 신원이 되었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후 현재의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창랑정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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