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상주시

운곡마을(의암고택,청간정)

자즐보 2012. 8. 26. 11:47

 

 

 

상주 운곡(雲谷)마을

 

조선시대에 풍양조씨가 정착하여 이룩한 마을로 처음에는 운가리 라고 불렀는데,

아침마다 마을 양편으로 흐르는 개울 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또는 서운(瑞雲)이

감돈다고 하여 운곡 이라 했고, 이 마을 뒷산에 칡이 무성하다 갈가실 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이 운곡마을에는 의암고택과 청간정(聽澗亭), 송동재(松洞齋), 경모재(敬慕齋), 만송재(晩松齋) 등의

재실과, 유신당(維新堂), 양교당(養敎堂), 경신당(敬愼堂) 등의 고가들 및 공동우물, 막돌 담장,

초가와 서낭당 등 양반과 서인이 공동 주거하던 유적들이 산재하여 있다.

 
원래 이 마을은 풍양조씨(豊壤趙氏)의 동족부락으로 모두 100여호가량 되었으나

일제시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6.25 전에는 전체 60호중 조씨가 40호 정도이었고,

현재는 25호중 11가구의 풍양조씨가 살고있다.

 

 

운곡마을 안내도

 

 

보호수 "팽나무" 

 

 

 

 

마을의 옛 공동우물 

 

 

의암고택으로 연결되는 옛담장 골목길 

 

 

 

의암고택(依巖古宅,경북 문화재자료 제177호)

조준희씨의 16대조인 직장공(直長公) 조희(趙禧,1507~1587)께서 1565년에

이 마을에 입향하였고, 운곡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의암고택은 

7대조모인 모임당(慕任堂) 연안이씨(1849~1826)가

큰아들인 극암(克庵) 조식(趙栻,1774~1837)과 더불어 1800년경에 지었다.

안채를 제외한 여타 건물들은 소유자의 조부인 만당(晩堂) 조태연(1877~1934)께서

1910년에 기존 낡은 건물들을 허물고 개축한 건물들이다. 

'의암'은 조범구(趙範九)선생의 호로서, 의암고택이라는 당호는 후대인이 의암 조범구 선생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붙인 건물명칭이다. 이 집 대문 앞에 있는 탕건 모양의 큰 바위를

'탕건석'이라 하는데, 관습적으로 사람들이 이 탕건석을 '의암'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의암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서, 정침(안채)과 사랑채, 안사랑채, 고방채, 대문간채,

사당, 뒤주채, 장독대 등 조선 시대 사대부 주택의 구성 요소를 고루 갖춘 집이다.

이 건물의 명칭은 소유자의 고조부인 의암(依巖) 조범구(1834~1896)의 호에서 유래한다.

의암공은 병인양요 때 상주지역에서 의병을 조직하였으며, 당대에 유학자로 성망이 높았던 분이다. 
 

 

 

대문 앞, 탕건 모양의 큰 바위를 '탕건석'이라 하는데 '의암'으로 부른다.

 

 

의암고택의 출입문인 대문간 

 

 

대문간을 들어 서면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인 일우당(逸憂堂)이 있다. 

 

 

 

 

사랑채의 전면 좌측에 설치된 일각문, 안채로 들어 가는 문이다.

 

 

일자(一字)형태로 남향으로 지은 안채

 

안채 대청에 걸려 있는 慕任堂(모임당) 현판

 

 

ㄱ자형태의 곡간채

 

 

곡간채에 있는 디딜방아

 

곡간채  좌측에 2m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단간 뒤주   

 

 

뒷마당에 장독대

 

 

사랑채의 뒷편, 여기에도 안채로 들어 가는 중문이 있다.

 

 

중문으로 들어가면 사랑채 온돌방에 굼불을 떼는 아궁이가 있다.

 

 

 

가묘, 사랑채의 뒷편에 방형으로 토담을 두르고 설치하였다.

 

 

집밖으로 나가는 중문, 지금은 감나무 밭이다. 

 

 

 

 

청간정(聽澗亭,경북 문화재자료 제558호)

청간정은 가곡 조예(1608~1661)선생이 1655년경 건축한 건물이다.

조예의 아들인 죽파(竹坡) 조원윤(1633~1688)과 용슬헌(容膝軒) 조진윤(1635~1709)

형제는 미수 허목의 제자로 미수로부터 청간정의 현판을 받아 들보에 걸었다.

“청간정”의 당호는 자연의 소리인 계곡의 물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마음 깊숙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으로서 자연을 벗하며 자신을 수양하려는

 조선 선비의 자세를 알 수 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 단에서 제자를 가르친 뜻을

 본받아 정자 옆에 두 그루의 큰 은행나무를 심고 이를 자손들을 위한

 강독의 터전으로 삼고자 하였다.

 의암 조범구(1834~1896)가 1870년경 쇄락한 건물을 중수하였으나,

 조선중기 건축물의 특성을 갖추고 있으며 건립 당시의 규모와 형식도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다.

 

 

 

 

 

 

 

청간정 옆 은행나무 두 그루, 보호수이다. 

 

 

 

'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 > 상주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작당(悟昨堂)  (0) 2012.08.26
양진당(養眞堂)  (0) 2012.08.26
상주 노악산 & 남장사  (0) 2012.06.23
상주 경천대  (0) 2012.06.04
상주자전거박물관  (0) 2012.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