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청도군

죽바위(粥岩→竹岩)

자즐보 2012. 2. 25. 00:38

 

 

 

죽바위(粥岩→竹岩)

 

청도군 각남면 녹명1리 운정산 자락에 백여 미터나 되는 큰 바위가 있고

그 위에는 한 그루의 소나무가 척박한 바위속에 뿌리를 내리고 꿋꿋이 자라고 있다.

 

이 바위의 옛 이름은 죽암(粥岩)인데, 죽을 넓은 그릇에 담아 둬야

편하다고 하여  마을사람들이 죽바위로 불렀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3백여년 전에 이승(異僧) 한사람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바위를 보고 나뭇꾼에게 물었다. "이 바위 잘도 생겼는데, 이름을 무어라 부르오?"

죽바위라 부른다고 하니 중은 "이곳은 장수가 태어날 고장인데 장수가 어찌 죽을 먹고

힘을 쓰겠느냐"하며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곧 대나무를 한 그루를 구해와 심어놓고는

"앞으로 이곳을 죽암(竹岩)이라 부르시오" 이르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바위를 죽암이라 부르게 되고 지금도 대나무는 수십백 그루로 늘어나

자라고 있다. 세상이 평온 해지자 운정산은 수풀이 우거져 노루가

마을 뒷산까지 내려와 요란스럽게 울게 되자 구만동은

그 이름이 녹명(鹿鳴)이라 바뀌어 졌다고 한다.

 

녹명리의 옛 이름은 구만동이다.

이 마을을 구만동으로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14대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들은 길을 나누어

창녕. 영산. 밀양을 거쳐 파죽지세로 쳐 올라왔다.

 

당시 이 마을 앞에 있었던 운정산은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요지이며

울창한 숲에 덮여 있었다.

 

왜적이 올라 온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이 모여

이 산속에 숨어 성을 쌓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싸울 준비를 한 후 왜적을 기다렸다.

 

다행히 왜적은 이 곳에 많은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쳐 북상하였다.

그 곳에 숨어있던 1만여명이 목숨을 건졌다 하여 그 후부터 이 마을을 구만동이라 불렀다.

 

그 때 목숨을 건졌던 1만여 주민들은 그 성터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있는

1만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이 바위 위에서 기쁨을 나누고 앞날의

무사를 기원하였다고한다.

 

 

 

 

 

근래에 지은 "죽암정(竹岩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