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청도군

청도읍성,향교,석빙고,지석묘군,삼층석탑

자즐보 2012. 6. 3. 21:03

 

2012년 6월 2일

 

청도읍성(경북기념물 제103호)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청도읍성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읍지』기록에 따르면 고려 때부터 있었던 성으로 둘레 1570보(1880m),

높이 5자 5촌(1.7m)이었고, 당시에는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토성이었는데,

조선 선조 23년(1590)에 돌로 고쳐 쌓아 선조 25년(1592)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성내에는 관아와 객관 유향소 군기고. 근민당. 서역소 작청. 등의 건물과

청덕루. 청향루. 죽서루 등의 누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볼일루(동문), 무화루(서문), 공북루(북문)가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다.

그후 일제강점기에 읍성철거 정책으로  대부분이 헐리었고, 지금은 성벽의

바닥과 일부만이 남아있다.  2007년부터 현제까지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청도읍성 안내도

 

 

 

 

 

청도읍성 관리들의 선정비군(善政碑群)

1675~1904년 까지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관찰사 2기

군수 25기, 찰방 3기 등 모두 30기다.

 

 

 

 

 

 

동헌,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중심 관찰사.수령등의 정청

 

 

도주관(道州館),객사로 사용하던 건물

도주는 고려시대 청도군의 이름이다. 중앙의 정청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였다. 양쪽에 동헌과 서헌의 접객시설을 갖추어

이곳을 들리는 관원이 머물수 있도록 하였다. 도주관은 조선초기부터 있었으며

정청은 정면3칸 측면4칸 맛배지붕의 익공집이며, 좌.우 객사는 정면6칸 측면4칸이다.

 

 

대원군의 척화비

고종3년(1866) 병인양요와 고종8년(1871) 신미양요를 치른후 서양인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위해 1871년 4월에 대원군의 명령으로  서울 종로를

위시해서 전국 주요 도로변에 세웠다. 비문 내용은 "서양 오랑케가 침입하는데

싸우지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것이된다"란 뜻이다.

 

 

 

북문 공북루(拱北樓)와 북쪽 성곽 

 

 

성 안에서 본 공북루

 

 

 성 밖에서 본 공북루

 

 

공북루 현판 

 

 

공북루 앞으로 축조되어 있는 옹성

 

 

 

북쪽 성곽 앞 연못

  

 

 

 

청도읍성 옆 꽃자리

 

 

 

 

 

 

 

 

 

 

 동쪽 성곽

 

 

동쪽 성곽은 아직 복원되지 않은채 돌담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도향교(경북유형문화재 제207호)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청도향교는 조선 선조 1년(1568)에 고평동에 세웠던 것을

영조 10년(1734)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향교 내의 건물로는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등이 있다. 그런데 건물 배치 중 일반적으로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가 아니라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우에 놓여 있는 좌묘우학의 배치가 특이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 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경북유형문화재 제207호) 

 

 

 

 

사락루(思樂樓),외삼문(外三門)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대성전으로 통하는 쪽문

 

 

내삼문(內三門)

 

 

 

대성전(大成展) 

 

 

지인재(智仁齋) 

 

 

 

청도석빙고(보물 제323호)

 

숙종 39년 (1713) 5월에 지어졌으며

경주 석빙고 1729년, 창녕 석빙고 1742년에 건립되어

청도 석빙고가 현존하는 석빙고중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이다.

 

 

 

 

 

 

 

 

 

범곡리 지석묘군

 

 

남방식 지석묘로 50m 간격을 두고 동쪽에 22기, 서쪽에 12기가 있다. 

 

 

 

 

 

 

봉기동 삼층석탑 (보물 제113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으로 높이 5.47m에

상층부는 없어지고, 기단부와 탑신은 잘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