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2010년12월3일
안동장씨 성곡재사
장정필[張貞弼/898(신라광화1)~978(고려경종3)]
본관 安東. 초명은 길(吉). 자는 영문(寧文). 호는 포음(圃蔭). 원(源)의 子.
930년(고려태조13) 古昌(안동)으로 쳐들어 온 견훤군과 맞서 병산에서 전투할 때,
권행, 김선평과 함께 왕건을 도와 견훤군과 싸워 대승을 거둠. 이 공으로 大相에 오르고
삼중대광삼한벽상아부공신태사(三重大匡三韓壁上亞父功臣太師)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삼태사의 한사람인 안동장씨 장정필의 제단을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1806년(순조6)에 건립, 1853년(철종4)에 중건하고, 1966년에 누문인 영휘루를 건축하였다.
성곡재사와 태사공의 단소는 칠계재(七戒齋) 장세규선생이
문헌과 제도를 따라 중건한 것이다.
영휘루(永輝樓)
정면5칸,측면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2층 건물이다.
영휘루의 안쪽
추원재(追遠齋)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재사의 중심 건물이다.
동재, 정면3칸 측면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서재, 정면4칸 측면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성곡재사 중건 기념탑과 연못
재사 왼편으로 "장태사공 단소" 가는 입구
단소로 오르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소나무가 즐비하다
송림이 울창한 단소
高麗三韓璧上三重大匡亞父功臣張貞弼祭壇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장정필제단) 비석
비석 뒤에 보이는 바위가 산신을 모시는 제단인 듯,,,
동편 문무인석
수백년 풍상 격으면서도
시조 제단을 지킴이 행복하여 늘 웃음진 모습이 경이롭다
서편 문무인석
어디서 왔니껴...
잘 가시데이...
장태사 신도비각
高麗太師圃蔭張先生尋誌碑(고려태사포음장선생심지비)
성곡재사는 1966년 영휘루를 건립하고 보수정비하는 등
문중에서는 60년대에 큰 성황을 이루었던 시기였으며,
그 배경에는 한국일보 사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한
장기영(張基榮,1916~1977)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상(百想) 장기영 선생은 1934년 선린상업고교 졸업 후
조선은행 입사,1948년 한국은행 조사부장과 부총재를 역임하고,
1952년 조선일보사 사장이 되면서 언론계에 들어섰다.
1954년 4월에 <태양신문>을 인수하여 <한국일보>로 바꾸어 창간했고,
죽을 때까지 사장·사주로 한국일보사 경영에 관여하면서 자매신문으로
<서울경제신문><일간스포츠>를 창간·발행했다.
1961년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초대회장을 맡았고,
그밖에 대한축구협회 국제 올림픽 위원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1966년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 및 아시아 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편 1964년에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제3공화국에서 각료를 지내면서
경제자립의 터전 마련에 힘썼다. 또한 1971년 민주공화당 서울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과 제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등
언론계 이외에 정당과 정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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