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2011년 01월 14일
봉정사(鳳停寺)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자락에 위치
672년(문무왕 1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전해진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자료들이 소실되어 창건 이후의
사찰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1972년 봉정사극락전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공사를 진행할 때
상량문에서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극락전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이런 사실이 발견되어 봉정사 극락전이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극락전·고금당·화엄강당 등 중요 건축물과
고려시대의 대표적 석탑인 3층석탑이 있다. 이 가운데 극락전은
국보 제15호, 대웅전은 보물 제55호(국보 제311호로 승격)로
지정되어 있으며,부속 암자로는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봉정사 일주문
봉정사 안내도
만세루(경북유형문화재 제325호)
봉정사의 대웅전과 극락전에 들어가려면 만세루라는
중문(中門)을 통과해야 한다.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바람막이판을 달았다.
건물의 구조는 2층 누각식으로 건축되었으며,
1층인 아랫부분은 자연석 기단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만세루는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으며
법고(法鼓)와 목어(木魚), 운판(雲版)이 놓여져 있어
예불을 알리는 고루(鼓樓)의 기능도 겸한다.
누문은 대부분 2층으로 건축되며 아래층은 사찰의 중정으로 통하는
통로의 기능을 하고, 위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운판·법고·범종(梵鐘) 등을 걸 수 있는 종루(鐘樓)나
고루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대웅전(국보 제311호)
봉정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 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근 발견된 후불 벽화는 고려 불화의 기법과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고려 후기로 추정하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주심포계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1969년 해체·복원할 때
나타난 상량문에 의하면 1588년(선조 21)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장대석(長臺石) 댓돌 위에 두꺼운 널판을 쪽마루처럼 깔았고 사분합(四分閤)의 띠살문을 달았다.
공포(栱包)와 공포 사이의 포벽(包壁)에는 화반(華盤) 같은 것을 배치하지 않고 벽만을 쳤으며,
이 벽면에서 밖으로 외목도리(外目道里)에 이르는 사이는 널판을 댔다.
건물의 측면에는 중앙에 방주(方柱)를 세워 대들보를 받쳤으며,
대량(大樑)과 그 위의 종량(宗樑)과의 사이에는 살창(窓)을 하나 달았고,
종량 위의 마루대공(臺工) 좌우에는 소슬합장(合掌)이 보인다.
박공(牔栱) 머리에 나와 있는 도리 밑을 받친 첨차(檐遮)들은
그 전부가 다포집 계통의 첨차들이다.
목조관세음보살 좌상(보물 제1620호)
봉정사의 부속 암자인 지조암에 있던 것을 봉정사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협시불로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로서는 관음보살상만이 전해지고 있어 알 수 없다.
머리에는 화관(花冠)을 쓰고 있으며, 머리카락 일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상체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었고, 가슴 부분에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은 높이 105㎝, 폭 63㎝ 크기로 결가부좌에 설법인을 하고 있다.
영산암(경북민속자료 제126호)
영산암은 봉정사의 동쪽에 있는 부속암자로
응진전·영화실·송암당·삼성각·우화루·관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 등의 사료로 보아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영산암의 문루에는 초서로 '우화루(雨花樓)'라고 씌어진 현판이 걸려 있다.
우화루의 아래를 통하여 영산암에 들어서면 지형의 고저차를 이용하여 마당을 3단으로 구획하였다.
상단에는 주불전인 응진전과 서쪽으로 삼성각, 영화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 동산을 만들었다.
중단에는 관심당과 송암당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하단에는 우화루가 놓여 있다.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로 지었으며, 맞배집이면서도 총량을 대량에 걸러 놓아
팔작지붕의 가구수법을 보인다. 송암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으로 마루 1칸, 방 3칸,
그리고 방의 전면에 툇마루로 구성된다. 관심당은 우화루와 연결된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송암당과 함께 요사로 쓰이는 건물이다. 이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口' 자를 이루어
폐쇄적인 형태로 보이지만, 우화루의 벽체를 없애고 송암당을 누마루로 처리하여
개방적인 요소를 많이 채택하였다.
범종각
고금당(보물 제449호)
1967년 6월 23일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극락전 앞뜰에 동향(東向)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원래는 맞배집 건축이나
북쪽 측면은 훗날 팔작지붕으로 개조하였다. 남쪽은 지붕을 연장하여 칸을 막고
부엌을 달았으며, 내부는 온돌을 놓고 요사(寮舍)로 사용하였다.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았고 벽간(壁間)마다 외짝 띠살문을 달았으나 원래의 문짝은 아니다.
공포(栱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된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의 구성인데,
기둥 윗부분에 꽂은 홋첨차와 그 위로 주두(柱枓)에서 나온 살미첨차가 겹친 위에
행공(行工)첨차를 가로로 놓고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쳤다.
주두에서 좌우로 벽면에 배치된 첨차는 창방(昌枋)과 함께 포벽(包壁) 속에 가리워 보이지 않으나,
건물의 후면은 모두가 원래대로 남아 있다. 공포를 구성하는 첨차(檐遮)의 형태가 이미 조선 전기의
특색을 잃고 변형된 점으로 미루어 건립연대는 조선 중기에 속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제182호)
봉정사를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으로 나누었을 때 이 3층석탑은 고금당과 함께 극락전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가람의 배치나 조성 양식으로 보아 그 건립 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2중 기단(基壇)의 네모 반듯한 모양의 석탑으로 기단부에 비하여 탑신부의 폭이 좁다. 각 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률이 적고 옥개석도 높이에 비해서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탑의 높이는 318㎝이다.
극락전(국보 제15호)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전대인 통일신라시대의 건축 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았고, 양옆 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이른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감실형 법당이다. 1972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 이전에는
분합문과 쪽마루가 있는 조선식 건물이었는데, 고려 양식으로 개조하여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또 최근에 법당 안에 마루를 깔았는데,
그전까지 법당에는 전돌이 깔려 있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아미타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후기의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놓았다.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 양식을 본받고 있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內部架構)의 고격(古格)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며, 부재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적 기법을 갖추고 있어
매우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석조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44호)
삼성각
지조암
성보관
봉정사의 유물전시관으로 2007년 8월 10일 개관하였다.
관음굴
천등굴
천등굴은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는 대망산(大望山)이라 불렀는데 신라 문무왕 때
능인이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던 중 천녀가 능인의 수행에 감복하여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이로부터 능인이 공부하던 바위굴을 천등굴이라 하고,
산 이름도 천등산(天燈山, 575.8m)이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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