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서후면

서후면 저전리,광평리

자즐보 2010. 11. 23. 18:13

 

 

 저전리(苧田里)

 

모시밭이 많다고 모시밭이라 불렀는데 한자 표기로

모시 저(苧)자에 밭 전(田)자를 써서 저전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은 모시밭, 거리마, 정외, 조랏, 양지마, 삼거리, 무지랑 등

7개이며 206 가구에 616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옛 부터 한양조씨들이 모여 살았다. 

 

 

한양조씨 저전세거지향

 

 

최근에 건립한 "한양조씨 모시밭 입향 행적사" 

 

 

 

 

한양조씨 문중의 "쌍계서당 & 성암정"

 

 

 

 

 

쌍계서당(雙溪書堂)

한양조씨 시조의 13세 손인 조적의 증손자인

조덕립.조예립 형제가 부친 조사룡을 위해 19세기 초에 지어

학문을 닦고 문준자제들을 가르치던 곳. 학남초등학교의 모태가 된다.

 

<뒷쪽 산등성이에 큰바위 7개가 북드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어

"칠성바우"라 하며,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올리면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암정(星巖亭)

제비원 석불에 "나무아미타불"을 새겼다고 전해지는

주사 조병태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61년 세운 정자. 

 

 

 

 

 

 

 

 

존경재(尊敬齋)

조적의 부인 청송심씨의 재실로 매년 10월 10일 제사지냄.

<1519년 기묘사화 때 한양조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조종(趙琮)의 아들 5형제가

영주로 몸을 피하였는데, 이후 넷째 아들 조신완(趙信琬)봉화군 소천면 대현리

정착하여 세거하였다. 조신완의 증손자인 조적(趙績)이 세상을 뜨자 부인 청송심씨

막막한 두메산골을 벗어날 결심을 하고 아들 3형제를 데리고 무작정 길을 떠나

저전리에 정착하여 한양조씨 집성촌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광평리(廣坪里)

광평리는 북후면 도촌리와 경계하고 있으며,

광평이란 지명은 천등산 자락에 넓고 평평한 바위가 많아 너븐들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넓을 광(廣) 자에 평평할 평(坪) 자를 써서 광평리라 하였다.

광평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고, 1리에 너븐들(광평), 추산 2개의 마을에

64세대 194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으며, 2리에는 진사리, 가야, 연등골, 안골(內洞) 등

4개의 마을에 68세대 172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 날 이곳에 "여인국"이 있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나

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저전리를 지나 봉정사 방향으로

조금 가다보면 있는 "가야"라는 지표석

 

 

 

 

오른쪽으로 세멘트 포장길을 따라 쭈욱 가면

천등산 자락에 광평마을이 나온다. 

 

 

 

위 사진 바로 옆 논에 있는 바위가 눈길을 끈다

흡사 거북이가 물을 찾아 가는 듯 한 모습이라 "거북바위"라 한다.

 

앞 서는 거북바위...

 

 

뒤 따르는 거북바위...

 

 

 

이 산자락에 있는 큰바위도 자세히 보면 거북이 형상이다...

 

 

마을입구 솔밭 "농심의 쉼터"란다

 

 

건너편에는 저수지가 있다...

 

 

국헌 류태훈 선생 詩 비,,, 

 

 

 

 

광평2리 마을 전경,,,

전주류씨(무실류씨)가 많이 살았으며 현재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마을회관 

 

 

마을 안쪽 조선 명종 때 절충장군 강희철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 지은 "함벽당" 정자가 있다.

(상세 내용은 함벽당 참조)

 


'웅부안동(雄府安東) > 서후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장씨 성곡재사  (0) 2010.12.04
안동김씨 태장재사  (0) 2010.12.04
경당고택(敬堂古宅)  (0) 2010.05.16
봉정사 & 천등산  (0) 2009.12.25
천등산 봉정사  (0) 200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