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도산면

농암종택(聾巖宗宅)

자즐보 2010. 4. 14. 22:10

 

 

 

 

농암종택(聾巖宗宅)

  

농암종택은 영천이씨 안동입향조이신 이헌(李軒,농암의 고조부))선생이

1370년 경 지은 집이다. 농암 이현보 선생이 이 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말년을 보내고 돌아가신 곳이다.

직계자손들이 640여 년간 대를 이어 살아 오고 있으며,

농암선생이 불천위로 모셔졌기 때문에 농암종택이라고 한다.

종택은 2천여 평에 사랑채,안채,별채,문간채,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에는 농암의 아들 매암 이숙량이 왕자사부의 벼슬을 받았을 때 

선조께서 "적선(積善)"이라 써서 하사한 현판이 걸려있다.  

 

농암 이현보(1467~1555)는 1504년(연산군 10년)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이다.


농암종택이 있던 곳은 분천마을인데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

이후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전되어 있던 종택과 사당, 긍구당을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 씨가 한곳으로 옮겨 놓았다.

2007년에 분강서원이 재이건되었으며, 지금은 분강촌이라고도

불리며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가송리'는 그 이름처럼 ‘佳松-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로

산촌과 강촌의 전경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마을이다.


신비의 명산 청량산과 더불어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낙동강 700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마을 앞에는 강과 단애,

그리고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이 매우 조화롭게 어울려 있어, 이른바 '도산9곡'의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이런 연유가 아니더라도 가송리는 '공민왕 유적', '고산정',

'월명담', '벽력암', '학소대' 등 명소를 감싸안고 있어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

찾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솟을대문채 

 

 

 

사랑채

 

 

 

 

 

사랑채 옆, 장독대와 뒤쪽 사당

 

 

 

긍구당(肯構堂)

1370년 농암의 고조부이신 이헌 선생이 지었다.

"긍구"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가라는 뜻이며,

농암은 이 곳에서 태어나고 이 곳에서 돌아가셨다.

 

 

 

 

 

 

 

 

명농당(明農堂)

1501년 농암 선생이 지은 집으로 근래에 복설한 것이다.

 

 

 

 

분강서원(汾江書院)

지역사림들이 농암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1699년 건립하였다.

 

 

 

 

분강서원, 대청은 강당으로 흥교당(興敎堂) 현판이 걸려 있다.

 

 

 

동재 극복재(克復齋) 

  

 

 

분강서원 옆 관리사 건물

 

 

농암사당 

농암 이현보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곳

 

 

 

농암 신도비 

 

 

 

애일당(愛日堂)

분강 기슭에 부모님을 위해 지은 집

 

 

 

 

 

 강각(江閣)

 

 

 

농암각자 

 

 

 

 

 

 

 

'쌍암'의 글씨는 분천리의 분강 속, 수마에 다듬어진 커다란 자연 암석의 양면에

조화롭게 새겨져 있다. 글씨 모습은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용트림같은 걸작의 명필이다.

가뭄에 물이 빠지면 다가가서 근접해서 볼 수도 있다.

 

 

강건너 산 전망대에서 본 농암종택 전경

 

 

분강서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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