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 안보

60년 4·19의거

자즐보 2019. 3. 23. 20:43

 

 
4월 혁명, 4·19의거라고도 한다. 4·19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1960년 3월 15일(화) 실시된 자유당 정권의 불법·부정 선거였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이었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시위를 정권 비호세력인 반공청년단이 습격하자,

4월 19일(화)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가세했다.

당일 서울에서만 약 130명이 죽고, 1,000여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가 거세지자 4월 26일 이승만은 사임을 발표했고, 허정의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다.

 

 

 

 

1960년 3월 15일 선거 당일날 마산에서는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들은 시위하는 시민을 향해 총을 쏘았다.

 

 

 

 

 이날 시위에 나갔다가 실종된 김주열 군의 시신이 4월 11일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 바다에 떠올랐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8일, 서울에서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19일에는 서울의 주요 대학과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고 여기에 시민들이 합세하였다.

시위대는 정·부통령 선거를 다시 하고, 독재 정권은 물러가라며 시위를 하였다

 

  

 

 

4월 25일 서울의 대학 교수 300여 명이 학생들을 지지하면서 시위하였다.

26일 새벽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나라!"라고 구호를 외쳤다.


 

 

 

19일에 친구를 잃은 서울 수송 초등 학교 어린이들도 시위에 참가하였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남으로써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4·19 혁명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학생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