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여행 * 문화탐방/충청도☆대전

옥천 육영수 생가

자즐보 2017. 2. 4. 23:34

 

 

 

육영수 생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119(교동리 313) / 기념물 제123호

 

 

 

 

 

육영수 생가 안내문

이 가옥은 육영수 여사가 1925년 11월 29일 태어나 1950년 박정희 (전)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으로 교동집(校洞宅)이라 불려졌던 옥천지역의 명가(名家)이다.

1600년대 부터 삼정승(김, 송, 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전해진다.

1918년 육여사의 아버지 육종관이 이 집을 매입하여 개축하여 사용하였으나

이 후 오랫동안 방치하여 퇴락되어 1999년 철거되고 생가터만 남았었다.

옥천군에서 2002년 4월 26일 육영수생가를 충북기념물 제123호로 지정하고

복원계획을 수립하여 지표조사와 발굴작업을 거쳐 2004년 부터 복원작업을

실시하여 2011년 5월 11일 복원식을 갖고 현재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는 내용... 

 

 

 

 

대문채,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동편에 3칸의 곳간이 붙어있고

서편에는 낮은 담장에 연하여 아래대문채가 있다.

 

 

 

아래대문채, 판자로 만든 문은 차고로 사용한 것이란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마당과 정면 5칸의 사랑채가 정중히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랑채는 정면 3칸의 대청마루와 2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면에 툇마루가 깔려있다. 이곳은 주로 귀빈접대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박정희 (전)대통령 방문시 임시 집무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연못, 사랑채 동편에 있는 연못에는 다년생 수생식물인

수련과 창포가 자생하고 있으며, 연못 안쪽에는 연당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연당사랑, 연못의 안쪽에 배치하여 풍류를 즐기는 공간으로 정면 3칸의 규모로

전면에 툇마루를 깔고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가옥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문채, 안채로 출입하는 문으로 왼편에 온돌방 2칸과 오른편에 곳간 1칸을 두었다.

온돌방은 가옥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즐기고

겨울철에는 새끼를 꼬기도 하던 곳이다.

 

 

 

중문채 안에 별도의 담장과 협문을 두어 안채로 출입하도록 배치하였다.

안채는 주로 여성들의 공간이라 중문채를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게 하는 배려인 듯... 

 

 

 

안채, ㄷ자형 구조로 몸체는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고,

동편 1칸의 골방에 육영수 여사가 기거한 방이 딸려있다.

 

육영수 여사의 생애

옥천 교동집 작은아씨로 불리던 육영수는 1925년 11월 29일

아버지 육종관, 어머니 이경령 사이에서 1남 3녀중 셋째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충실히 받고 자라 항상 예의가 바르고

침착한 성격이었다. 1938년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재봉과 수예솜씨가

뛰어났으며 요리에도 남다른 솜씨가있었다. 1942년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교동집으로 내려와 집안일과 아버지 사업을 도왔으며, 1945년 11월

옥천여자중학교 가사 담당교사가되어 학생들에게 수예와 미술 등을 가르켰다.

1950년 6.25전쟁 때 피난 온  부산집에서 송재천 소위의 소개로 박정희 소령과

처음 만나 그해 12월 대구에서 박정희와 결혼하고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이 되어 서울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 어깨동무 발간,

능동에 어린이대공원을 만들어 청소년 육성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또한 양지회 봉사활동 등을 통해 고통받고 소외된 서민들을 위로하고

실의에 찬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는 등 헌신적인 활동을하였다.

 국민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영부인으로 살다가

1974년 8월 15일 제29회 광복절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49세의 나이로 운명하셨다.

 

 

안채마당과 사랑채 뒷편이다.

 

 

 

안채 서편으로 부엌문을 열고 나오면 우물이 있고,

 

 

 

곡식을 보관하는 2개의 뒤주가 설치되어 있으며,  

 

 

 

뒤주 아래쪽에 연자방아가 있어 식생활의 최대한 편의를 도모하였다.

 

 

 

아래채로 출입하는 협문

 

 

 

 

아래채, ㄱ자형 구조로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가운데 2칸의 대청마루를 두고 동편에 2칸의 온돌방, 서편에 1칸의 안방과 앞쪽으로 부엌을 두었다.

 

 

 

아래대문채, 문을 가운데 두고 차고와 창고로 사용되었다.

 

 

 

안채의 후면

 

 

 

석빙고, 여름에 음식을 보관한 일종의 냉장시설이다.

 

 

 

사당,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곳

 

 

 

위채로 출입하는 대문채

 

 

 

위채, 전형적인 ㅁ자형 구조로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안대청이 있으며, 날개채는 행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 뒤쪽으로 대나무 숲이 있고, 별도의 협문과 담장을 두르고,  

 

 

 

1칸 규모의 초가정자를 두고 각종 과실나무를 재배하였다.

 

 

 

건너편에서 본 육영수 생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