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예천군

용궁 만파루, 독립운동기념비, 척화비

자즐보 2016. 1. 3. 23:35

 

 

 

만파루(萬波樓) 

 

 

 

 

 

"만파루는 1856년 구읍인 향석에서 이곳으로 이건하여

향토 수재들의 백일장으로, 한량편사의 시예소로, 남녀노소의 소요처로

특히 독립운동의 요람지로서 면민과 애환을 함께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1945년 8월 애석하게도 만파루가 붕괴되어 1988년 6월 현건물을 중건하였다."는 내용

 

 

 

 

 

 

 

독립운동기념비

용궁의 독립운동가 및 용궁 3·1운동 참여 학생들의

공적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용궁면민들이

뜻을 모아 1988년 6월 세운 독립운동기념비이다.

 

 

 

 

용궁 척화비(斥和碑, 문화재자료 제598호)

이 비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를 겪으며

전국의 주요 도로 등에 세운 척화비 가운데 하나이다.

 

병인박해(1866.3)를 계기로 프랑스 군대가 침입한 병인양요(1866.9),

독일 상인 오페르트(E. Oppert)의 남연군 묘 도굴사건(1868),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 사건(1866.7)을 구실로 미국 함대가 침입한

신미양요(1871)가 일어나 서양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프랑스와 미국의 침공을 격퇴한 대원군은 한양 종각 옆에 척화비를 처음 설치하였고,

전국 각지로 확대하여 통상수교거부정책(소위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였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를 자손만대에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비문을 짓고 신미년에 비석을 세운다. 

 

 

 

 

선현들의 선정비, 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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