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문경시

선유동천 나들길 - 학천정(鶴泉亭)

자즐보 2014. 9. 15. 11:17

 

 

 

학천정(鶴泉亭)

학천정은 도암(陶菴) 이재(李縡)가 용추동에 둔산정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으로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1906년 도암의 유풍을 기려

이곳에 학천정을 세운 것이다. 정자를 세운 후 오른쪽에

도암의 영정을 봉안한 도암영각(陶菴影閣)을 세웠다.

문경 선유구곡 중 구곡인 옥석대(玉舃臺)에 위치한다.

 

 

 

 

 

 

도암 이재(李縡)

이재는 용인 태생으로 경주이씨의 계파인 우봉(牛峰: 黃海道 金川郡) 이씨이고, 호는 도암(陶菴) 또는 한천(寒泉)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시조는 고려 명종 때 공신인 이공정(李公靖)으로서 우봉 이씨는 학문으로 전통을 이어온 씨족가문이라 할 수 있다. 이재는 영조의 탕평책(蕩平策)에 반대한 노론(老論) 의 대표적 인물이다. 호락논쟁(湖洛論爭) 당시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제자인 이간(李柬: 1677-1727)의 학설을 계승하여 심성설(心性說)을 반박하고 융화적 세계관,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펼쳤다.

그는 중부 만성(仲父 晩成)에게 사사받았고, 당시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문인이기도 하다. 그는 42세까지 대사헌, 한성부윤, 이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를 역임했다.

그러나 1722년 임인옥사(任寅獄事)때 경종을 암살하거나 폐위시키는데 관여했다고 하여 스승 중부 만성(仲父 晩成)이 옥사하자 사직하고 강원 인제에 들어가 성리학에 몰두 했다.

1725년 영조 즉위 후 다시 등용되어 대제학에 이르렀으나,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때는 소론학파들에 의해 서울 성문 밖으로 쫓겨났다. 이때부터 이재는 정쟁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관직을 멀리하고 문경 가은(聞慶 佳恩)과 용인 한천(龍仁 寒泉)등에 머물면서 오원(吳瑗:1700-1740), 임성주(任聖周:1711-1788), 김원행(金元行:1702-1772), 송명흠(宋明欽:1705-1768) 등 많은 학자를 길러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학문은 청나라의 학문과 문물을 배워 조선의 물질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자고 한 북학(北學)사상 형성의 토대를 이룩했다. 사후에는 용인시 이동면 원리에 묻혔으며 용인시 이동면 천리에 있는 한천정사(寒泉精舍)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도암집(陶菴集) 사례편람(四禮便覽),가례원류(家禮源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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