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여행 * 문화탐방/전라도♧광주

영암 월출산 도갑사

자즐보 2013. 11. 24. 16:48

 

 

 

월출산 도갑사(月出山 道岬寺)

 

월출산은 소백산계(小白山系)의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 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있다.

 

 

 

팽나무 보호수

1982년 보호수로 지정시 수령이 450년이니 2013년 현재 480살 이겠다ㅎ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갑사는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조선시대인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12개의 부속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러나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하여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으면서,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도갑사 안내도

 

 

 

도갑사 일주문

 

 

 

일주문 안쪽, 덕해문(德海門) ,

국중제일선종대찰(國中第一禪宗大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매표소 뒤, 차집인 듯한데 굳게 닫혀 있다.

 

 

 

도갑사 매표소

 

 

 

국중제일선종대찰 월출산도갑사 사적비

(國中第一禪宗大刹月出山道岬寺事積碑)

 

 

 

도갑사 해탈문(解脫門, 국보 제50호)

조선 성종 4년(1473년)에 건립,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로 들어 가는 문

 

 

 

 

해탈문으로 오르는 계단과 소맷돌

 

 

 

사자를 탄 문수동자상(보물 제1134호), 사찰의 수문장인 훔금강인 나라연금강

 

 

사찰의 수문장인 아(阿)금강인 밀적금강,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상(보물 제1134호)

 

 

 

광제루(廣濟樓)

 

 

 

 

 

종각(鐘閣)

 

 

 

성보박물관

 

 

도갑사 석조(石槽)

조선 숙종 8년(1682년)에 만들어진 석조는

큰돌의 내부를 파내고 물을 담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는 일종의 돌그릇

 

 

 

 

오층석탑(보물 제1433호)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고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심검당(尋劒堂)

 

 

 

미소당(微笑堂)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며 상징적인 우주의 중심이다.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 자리를

수미단이라고 하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의 모든 공간이

체계적으로 전개되어 우주적 질서를 표현하고 부처의 세상을 이룬다.

 

이 대웅전은 2층으로 조성된 법당으로

나무로 조각한 세분의 부처와 목탱화를 모시고 있다.

 대웅전은 1977년 관광객의 부주의로 소실되어 2009년 복원하였다.

 

 

 

 

 

천불전(千佛殿)

은행나무로 조성한 천 분의 부처를 모신 전각

 

 

 

 

국사전(國師殿)

도선국사와 수미왕사 진영이 모셔져 있는 곳 

 

 

 

도갑사의 개창조인 도선국사(826∼898년) 진영

속성은 김(金), 호는 옥룡자(玉龍子), 전남 영암(靈岩) 출생이다.

15세에 지리산 화엄사(華嚴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불경을 공부하고,

846년(문성왕 8) 대의(大義)를 통달, 신승(神僧)으로 추앙받았다.

이때부터 수도행각에 나서 동리산(桐裡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을 배웠으며,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운봉산의 굴속에서 참선삼매(參禪三昧)한 후, 태백산 움막에서 고행하였으며,

전라도 희양현 백계산 옥룡사에 머물다가 죽었다. 헌강왕의 초빙으로 궁중에 들어가

왕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음양지리설·풍수상지법은 고려·조선 시대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학설이다. 죽은 후 효공왕이

요공국사(了空國師)라는 시호를, 고려 현종은 대선사(大禪師),

숙종은 왕사(王師)를 추증했고, 인종은 선각국사(先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의종은 비를 세웠다. 도선에 관한 설화가 옥룡사 비문 등에 실려 있다.

 

 

 

수미왕사비각(守眉王師碑閣) 

수미왕사의 행적과 활동을 기록한 비석,

그는 조선 세조의 스승으로 왕사(王師)라는 호칭을 부여 받았다.

 

 

 

 

산신각(山神閣)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그리고 좌우에 명부시왕을 모신 전각

 

 

 

향다각(香茶閣) 

 

 

 

용수폭포(龍水瀑布)

 

 

 

 

 

용화교(龍華橋)

 

 

 

용화문(龍華門)

 

 

미륵전(彌勒殿)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도선국사비각(道詵國師碑閣,보물 제1395호) 

신라시대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조선 효종4년(1653)에 만든 것이다.

 

 

 

 

 

 

 

 비신 양 측면에 새겨진 운용문(雲龍紋)

 

 

 

 

부도전(浮屠殿)

큰스님들이 입적하신 후 사리와 유골을 수습하여 안치한 것으로

월출산 자락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 부도전을 조성한 것이다.

부도전을 출입하는 문은 진화문(眞化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