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영주시

금성대군신단(錦城大君神壇)

자즐보 2013. 7. 9. 16:32

 

 

 

금성대군신단(錦城大君神壇)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위치금성대군신단(사적 제191호)이 있는 이곳은

순흥안씨의 관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으로서  신재 주세붕(1495~1554)과

퇴계 이황(1501~1570)의 고고한 학문이 서려 있는 선비의 고장이다.

 

이곳 금성단은 사묘(祀廟)와 제단(祭壇 2,654㎡)으로 금성대군을 기리는 곳이다.

금성대군의 이름은 유(瑜)로 조선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이였으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고, 단종(조선 제6대 왕)의 숙부이자 세조(조선 제7대 왕)의 동생이다.

1433년(세종15) 여덟 살 나이에 금성대군으로 봉해졌으며 서른이 되던 해인

1455년(세조1)에 조카인 단종으로 부터 왕권을 찬탈하여 왕이 된 둘째 친형인

수양대군(세종의 둘째아들)에게 대항하다가 모반혐의로 삭녕에 유배되었다가

경기도 광주로 이배되었다.1456년(세조 2)에는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

김문기의 사육신들이 계획한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하자, 이에 연루되어

이곳 순흥으로 위리안치되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기천 현감의 고변으로 발각되어(1457년, 세조3) 이 사건으로 단종과

금성대군은 사사되고 순흥부는 폐부가 되었으며, 역모에 동참한 혐의로 

수천명을 죽여 그 시체를 소수서원 앞 죽계천(竹溪川)에 수장했는데,

그들의 피가 냇물을 따라 15리 가량이나 흐르다 끝난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이라고 하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금성대군신단 출입문

 

 

동편에 설치된 재실(齋室)

 

 

 

 

 

 

 

 

서편의 관리사

 

 

 

 

 

 

 

 

출입문 안쪽에서 본 전경

 

 

 

금성단 내삼문

 

 

 

 

 

금성단 전경

재단의 배치는 금성대군을 중앙 제단에 모시고

부사 이보흠을 서편에  무명의 의사들은 동편에 모셨으며

순의비(殉義碑)가 있어 해마다 봄. 가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순의비(殉義碑)

제명조선 단종조충신 금성대군성인신단지비

(齊明朝鮮端宗朝忠臣 錦城大君成仁神壇之碑)

 

 

 

금성대군지위(錦城大君之位)

 

 

 

제의사지위(諸義士之位)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했던 무명의 선비들을 추앙하기 위한 제단

 

 

 

부사이공보흠지위(府使李公甫欽之位)

금성대군을 도와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한 순흥부사 이보흠을 추앙하는 제단

 

 

 

 

압각수

옛 순흥도호부와 함께 그 영화를 그리며 오랜 세월 금성단을 묵묵히 지켜 온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