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청송군

방호정(方壺亭)

자즐보 2013. 6. 18. 18:11

 

 

 

방호정(方壺亭)

 

광해군 11년(1619)에 조준도 선생이 생모 권씨의 묘가 바라보이는 곳에

세운 정자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사친 또는 풍수당이라 하였다.

그 후 순조 27년(1827)에 방대강당 4칸을 늘려 지었다.

 

이곳에서는 창석 이준, 동계 조형도, 풍애 권익, 방호 조준도,

하음 신즙 선생 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겼다고 한다. 

강의 절벽 위에 세워진 방호정은 ㄱ자형의 평면으로 중심부분은

맞배지붕을 놓았고, 꺾여 위치한 부분은 팔작지붕을 놓았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성현들의 제영현판이 걸려있다.

 

 

백석천 건너에서 본 방호정  

 

 

자연과 하나되어 어울림이다. 

 

 

 

방호교 앞 주차장

 

 

 

조학래표성비(趙鶴來表誠碑)

방호 조준도 선생의 후손으로 방호교를 세우는데

많은 헌금을 낸 것에 대한 감사함을 담은 비석이다. 

 

 

 

방호정으로 건너 가는 방호교

육중한 철다리라 방호정과 주변 경관과는 조화롭지 못함이 애석하다. 

 

 

 

다리 앞 한켠에 세워져 있는 조학래헌성기념비(趙鶴來獻誠紀念碑) 

 

 

 

방호교를 건너면서 찍은 방호정

 

 

 

 

 

방호교 건너 방호정 옆 음식점이 눈살맛다... 

 

 

 

 

조준도,1576(선조 9)∼1665(현종 6).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함안, 자는 경행, 호는 방호, 청송 출신.  

아버지는 판서에 추증된 지(址)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습독(習讀) 회(恢)

의 딸이다. 재종숙인 개(介)에게 입양되었으며,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중형인 형도(亨道), 종형인 준남(俊男) 등은 의병으로 나갔으나,

노친봉양 때문에 함께 나서지 못한 뜻을 시로 남겼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고을사람들과 함께 창의하고 사재를 털어 군수물자를 조달하였고, 1629년 행의(行義)로

천거되어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거를 획책하였으나,  

다시 화의가 성립됨을 전하여 듣고 그만두었다. 1664년(현종 5)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어 부호군이 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선영 아래 풍수정(風樹亭)을 지어 늙도록 어버이를 사모하니,  

이민성(李民成)·이준(李埈) 등 고을선비들이 시를 지어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방호정 대문, 송하문(松霞門)

 

 

 

방대강당(方臺講堂) 

 

 

 

관리사, 고택체험을 할 수 있게 대여해 준다. 

 

 

 

방호정 후측면 

 

 

 

방호정 후면

 

 

방호정 앞면, 공간이 좁아 안전을 위해 휀스를 쳐 놓았다.

 

 

앞면 추녀밑에 걸려 있는 방호정 현판

 

 

'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 > 청송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촌약수  (0) 2013.09.16
신성리 공룡발자국 화석  (0) 2013.06.18
백석탄(白石灘)  (0) 2013.06.16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 & 신성계곡   (0) 2013.06.14
진보향교 & 송만정  (0) 201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