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풍산읍

만운리 호암 & 모암

자즐보 2013. 5. 16. 15:44

 

 

 

풍산읍 만운리에는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가 서너 덩어리 있다...  

 

 

 

 

虎巖(호암)   

 이 바위는 마치 호랑이같이 생겼는데, 바위면을 가로 38cm, 세로 25cm로

다듬고 그곳에虎巖’이라고 글자를 새겼다. 잘 보면 호랑이 같이 보인다.

 

 

 

 

 

 

帽巖(모암)

호암 바로 아래에 있는 모암(帽巖)이라고 글자를 새긴 바위다.

이 바위는 마치 망건처럼 생겼는데, 바위면을 가로 43cm,

세로 23cm로 다듬고 그곳에 반듯한 해서체로 글자를 새겼다.

한 글자의 크기는 16cm×21cm이다.

모암은 바위의 생긴 모양이 모자 같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근에 같이 각자되어 있는 글귀들과의 연관성을 추측컨데,

맹가낙모(孟嘉落帽)의 고사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陶笑虎溪 孟落龍山(도소호계 맹락용산)

맹가낙모라는 고사는 모암 아래에 있는 이 바위와 연관이 있다.

가로․세로 76cm로 다듬은 바위면에 세로 방향으로

‘陶笑虎溪孟落龍山’라고 큰 글씨(14cm)를 새기고,

옆에 ‘신축중추만촌옹제 불초자택봉차일석이근각’

(辛丑仲秋晩村翁題 不肖子宅鳳借一石而謹刻)이라고

작은 글씨(6cm)를 새겼다.

 

도소호계는 진나라 혜원법사가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

있으면서 호계(虎溪)를 건넌 일이 없었는데, 하루는 도연명과 육수정(陸修靜)

두 사람을 전송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건너게 되었는데,

범이 우는 소리를 듣고 맹세를 깨뜨린 것을 깨닫고, 세 사람이 서로 돌아보며

크게 웃었다는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맹락용산은 진나라 맹가(孟嘉)가 환온(桓溫)의 용산(龍山) 잔치자리에

있을 때 바람이 불어 모자가 떨어졌으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환온이 손성(孫盛)으로 하여금 그를 놀리는 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 시에 화답한 시가 매우 아름다웠다는 맹가낙모(孟嘉落帽)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작은 글씨의 내용은 ‘신축년 중추에 만촌옹이 쓰고 불초자 택봉이

이 돌에 삼가 새긴다’는 뜻이다.

 

 

 

 

 

선성이씨묘하동천(宣城李氏墓下東天)

이 바위는 호암과 마주보는 산자락에 별도로 떨어져 있으며,

선성이씨묘하동천(宣城李氏墓下東天)이라고 새겨져 있다.

가로24cm,세로140cm로 다듬고 8자 모두를 세로로 한 줄에 새겼다.

  여기의 선성이씨는 근재 이전으로 추측된다. 그는 기묘사화가 일어나

선비들이 화를 당하자 안동 풍산으로 낙향하였는데,

묘소가 만운동 모선루 뒷산에 있다.

 

 

 

만운저수지,,,

만운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959년 1월 1일에 준공한 관개용 저수지이다.

수량이 넉넉해 잉어,붕어,향어 등이 서식하고 있어

낚시터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만운리(晩雲里)의 자연부락 

 

못대미,지담(池潭) : 평지못 南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생길 때

마을 앞에 沼가 있어 지담이라 했다.

 

방대미,방담(方潭) : 孝子 權方潭이 살았다해서 方潭이라 하기도 하고

모가 진 못이 있어 방대미라고도 한다.

 

만운리는 아직도 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뜸한 곳이다.

 

할배들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다니고,

 

할매들은 풍산장날이면 비닐 봉다리를 한 손에 들고 걸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