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풍산읍

국신당(國神堂)

자즐보 2013. 5. 16. 14:41

 

 

 

 

 

 

 

 

국신당의 전설

 

옛날에 이곳은 대나무 밭과 팽나무가 무성했으나 지금은 찾아 블 수 없으며

매년 정월보름날 이 고장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서 하던 별신굿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또한 국신당에 모신 공민왕의 영을 위로하던 놋부처도 갑술년 대 흥수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국신당은 60여년 전 세워진 것으로 공민왕이 흥건적을 피해 이 지방까지 피난을 왔을 때의

일로부터 시작된다. 공민왕은 쫓기는 형편이어서 뒤따르던 신하들의 수가 하나 둘씩 날이 갈수록

줄게 되었으며 이곳 풍산에 도착했을 때는 불과 5, 6명에 지나지 않았다. 다급한 공민왕은

풍산 동쪽 상리동 산 정상에 허수아비 병정을 곳곳에 세우고 남으로 피신을 하였다 한다.

마침 이 때가 가을철이라 아침 안개가 끼어 공민왕을 쫓던 도적의 무리가 산 위를 보니

적군을 한눈에 집어삼키려는 기세로 많은 군사가 아래쪽을 향해 활을 쏘는

형용을 하기에 겁에 질린 적군은 후퇴하였다 한다.

공민왕은 이곳 무성한 대나무 숲에서 휴식을 취하여 무사했었다하여 이것을 기려

마을 사람들은 국신당을 제워 공민왕의 영정을 모시게 되었다.


그 후 조선 중엽에 이 마을에 권사도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말 잘타고 활을 잘 쏘아 그 무술이 천하일품이었다.

어느 날 이 수동마을에 어디선가 종일 하늘을 울리는 용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불안과 공포에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이 때 권사도 청년이

용마를 달래 보겠다고 나섰다. 권사도는 말을 타고 마을을 달려나가

낙동강 어귀 깊은 웅덩이 옆 큰 바위 위에서 울고 있는 용마에게 다가갔다.

신통하게 용마는 권사도가 가까이 오자 울음을 그쳤다.

사도는 용마를 집어타고 위풍당당하게 마을로 돌아왔다.

사도는 용마를 길들이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몇년 뒤 왜란이 일어나자 사도는 용마를 타고 출전하였다.

마을을 나가려는데 국신당 앞에서 말의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뜻밖의 변고에 술렁거렸다. 그러자 권사도는

[국신당을 돌보지 않아 신주가 노하신 것입니다. ]하며 국신사로 들어가

지성을 다하며 열심히 빌었다. 그러자 말의 발이 떨어져 전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사도는 떠나면서 국신당에 지성을 드릴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당부하였으며

후일 큰 전공을 세워 병마절도사의 자리에 올랐다 한다.

마을에서는 국신사 사당을 재건하여 정월 대 보름날에는 수동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인근 5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사당 앞에서 굿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굿을 수동별신굿이라 하며 400여년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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