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임하면

제산종택(霽山宗宅)

자즐보 2013. 4. 24. 09:24

 

 

 

제산종택(霽山宗宅)

 

이 가옥은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선생의 종택으로서

가옥의 건립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선생과 선생의 자제인

구사당(九思堂) 공이 기거하였으며 본채의 옆에는 선생의 정자인

「가헌(可軒)」이 있는데 가헌은 제산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고 강학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로 현재 사당으로 사용하며 제산 선생의 불천위제사 등을 여기서 지낸다고 한다.

이 가옥은 자손 대대로 기거하였으며 1850년대에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김락행(金樂行, 1708~1766)

본관은 의성, 자는 간부(艮夫), 호는 구사당(九思堂)이다.

약봉 김극일 공의 6세손이고 제산 김성탁 공의 맏아들이다.

숙종 34년에 내앞에서 태어났다.

밀암 이재 공의 문인으로 성리학과 예학에 밝았다.

영조 11년(1735)에 선생은 향시에 합격을 하였으며 동 13년 부친이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로 금부에 갇혔을 때 옥바라지를 하였다. 그 해 부친의 귀양길을 따라 제주도에 갔으며

이듬해엔 광양으로 갔다. 동 20년 부친이 유배소를 다시 신지도로 옮겨 함께 갔으며

이듬엔 다시 광양으로 유배지가 정해져 옮겼다가 동 24년 부친이 타계할 때까지

10여년 유배생활을 같이 하면서 극진히 모셨다. 선생은 유배생활의 부친을

극진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함께 학문에 정진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천문(天文), 의약(醫藥), 지리(地理), 음율(音律) 등 여러 분야에 연구를 하였는데

유배소에서 부친 제산 공은 “그만하면 너는 재질과 성력을 갖추긴 했으나

이 아비로 하여 학문에 전력을 못하게 됨이 안타깝구나”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선생은 부친 타계 이후 전혀 세사(世事)를 잊고 한층 학문과 치심양성(治心養性)에

전력하였다. 선생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공과도 교류가 두터웠다.

 

부친의 관작이 회복되었을 때 정조가 선생의 아들 시전(始全) 공에게 전교하기를

“경의 조부는 행의(行誼)로 선대의 두터운 은수를 받았고 경의 아비의 행의도

세상이 널리 알았으나 유용하게 쓰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다”라고 하였다.

 

 

 

정자 "가헌", 현재는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웅부안동(雄府安東) > 임하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헌  (0) 2013.04.24
백하구려(白下舊廬)  (0) 2013.04.24
귀봉종택(龜峰宗宅)  (0) 2013.04.24
의성김씨 종택  (0) 2013.04.24
약산 홍은사  (0) 201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