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임하면

귀봉종택(龜峰宗宅)

자즐보 2013. 4. 24. 09:17

 

 

 

귀봉종택(龜峰宗宅)

 

이 집은 청계공의 둘째 아들인 귀봉 김수일선생의 종택이다.

건축연대는 조선 현종 1년(1660)으로 선생이 분가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 25년(1888)에는 선생의 12세손인 김주병 공이 중수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 집에는 귀봉선생의 자제인 운천 김용선생이 임진왜란시 선조의 의주몽진까지

호종하면서 그 경험을 쓴 호종일기(扈從日記, 보물 제484호))가 보관되어 있다.

 

이 가옥은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상류층의 가옥양식을 지녔다.

가옥의 규모도 어느 정도 클 뿐만 아니라 사랑채, 안채, 대문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대부의 가옥으로서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대문채

 

 

사랑채는 옆의 아래사랑채와 합하여 그 크기가 정면 10칸 반이다.

ㅁ자형의 일반적인 가옥들보다는 다소 큰 편이다.

 

 

사랑채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달린 아래사랑채

 

 

안채는 정면 2칸, 측면 3칸으로 대청 좌측에 있는

안방 보다 측면이 2칸이나 돌출되었다.

 

 

 

 

 

 

 

 

김수일(金守一, 1528~1583)

본관은 의성, 자는 경순(敬純), 호는 귀봉(龜峰)이다.

청계 김진선생의 둘째 아들로 중종 23년에 내앞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청수한 기품에 문장이 활달하였으며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일찍 퇴계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심학(心學)을 연구하여 밝은 토론으로

스승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명종 10년(1555)에 선생은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향시에도 여러 번 장원하였다.

선생은 향리인 임하 부암에 백운정을 짓고 시문과 강산을 벗하여 유연자적 한아(閑雅)한

생활을 즐기면서 집안 자질(子姪)과 후진을 가르침에 정성을 기울었다.

선생은 또 집안의 어려운 일들을 돕고 외로운 아이들을 거두어 기르는 등

항상 너그러이 베풀어 친척이 모두 탄복했으며 선함을 기리고

악을 미워함에 강직하고 과단하여 고장 사람들 모두가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선생이 53세가 되던 해인 선조 13년에 부친인 청계공이 타계하자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3년을 슬퍼하며 지내니 몸이 몹시 여위였다. 선조 16년(1583)에 나라에서

유일로 자여도 찰방에 임하였으나 이 해에 타계하였다. 향년 56세이다.

선생 사후에 형제와 더불어 사빈서원에 배향되었다.

 

 

 

'웅부안동(雄府安東) > 임하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하구려(白下舊廬)  (0) 2013.04.24
제산종택(霽山宗宅)  (0) 2013.04.24
의성김씨 종택  (0) 2013.04.24
약산 홍은사  (0) 2013.04.23
안동 독립운동기념관 & 가산서당  (0) 201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