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정(光風亭)
광풍정은 1630년대에 경당 장흥효(1564∼1633) 선생이 지은 정자로
300여 문인이 학문을 익히던 곳이다. 선생은 일찍부터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영남학파 발전과 후배양성에 힘썼다.
현재 정자의 모습은 헌종 4년(1838)에 이 지역의 유림들이 고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광풍정은 대각선으로
대칭된 공간 배치를 하여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며, 지형적인 환경 요인 뿐 아니라
기후 요인까지 적절히 받아들인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고 한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며 그와 동년배인 인재(訒齋) 최현(崔哯)이
장흥효(張興孝)의 요청에 의해 쓴 경당기(敬堂記)에는 경당, 광풍정, 제월대의
이름을 왜 사용하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하루는 나에게 이르기를 ‘내가 삼가 정자(程子)의 뜻을 취하여 경(敬)으로써
서재를 이름하고, 인하여 자호로 삼았다. 또 삼가 여산의 기상을 사모하여 광풍(光風)으로써
정자의 이름을 짓고, 제월(霽月)로써 대(臺)의 이름을 지었다.” 고 되어 있다.
장흥효의 집은 춘파(春坡:봄파리)에 있었는데, 자신이 살던 집 남쪽에 정자를 지은 다음
서재와 정자 그리고 집 뒤 절벽 바위 대를 동시에 이름 짓고 이 취지를 알리며
최현에게 경당기를 부탁한 사정을 알 수 있다. 이 시기(1613년)는 최현이 금계에 와서
몇 달 머물면서 권준보(權峻甫), 장흥효와 더불어 학봉유고를 정리할 때이다.
이 내용으로 보면, 정자는 대개 이때 완성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그때 지은 정자는 200여 년이 지나 허물어지고, 경당의 5대손 장세규(張世奎)의
노력으로 1838년에 원래의 자리에 중건되었다.
경당장선생유허비
제월대(霽月臺)
敬堂張先生霽月臺 경당장선생제월대
능주목사 김진화(金鎭華)가 장흥효를 추모하기 위하여 새긴 암각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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