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봉화군

송월재종택 & 한산군종택(영모당,사덕정)

자즐보 2013. 3. 24. 21:44

 

 

 

송월재종택(松月齋宗宅)

 

송월재 종택이 처음 건립된 연대는 380여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월재 이시선公은 명청(법전면 풍정리)에 살림집을 짓고 서재를 만들어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종택은 약 280여년 내려오다가 그 후손들이

100여년 전에 지금의 법전면 법전리 음지마을로 종택을 옮겨 지었다.

 

이시선(李時善, 1625∼1715)의 자는 자수(子修), 호는 송월재(松月齋)이다.

본관은 전주, 조선 태종의 후예로 우산군(牛山君) 이종(李踵)의 6대손이다.

연산군 때, 그의 6대조 이종 및 고조 형제 6부자가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죽거나

귀양을 갔다가 중종 때 비로소 신원되었다. 아버지는 전주이씨 풍정리 입향조인

추만 이영기이다. 어머니는 봉화 닭실 군자감정 권래의 딸이다.

그는 이영기의 4남으로 닭실 외가에서 태어났다. 

이시선은 일생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간 적이 없었다. “과거공부는 남아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아니니 과거를 위한 공부는 그만두라.”고 가르친 아버지의 말씀대로

명리 다툼을 숙명으로 하는 벼슬길은 장부가 취할 길이 못된다고 하여 일찌감치 과거를 단념했다.

그런 그의 이름이 후대에까지 길이 전해진 것은 그의 독특하고 탁월한 학문과

뛰어난 행실이 당대 사림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시선은 원래 호방한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기를 즐겼다.

그는 가까이는 청량산·태백산·소백산 좀 멀리는 주왕산·금오산·속리산, 아주 멀리는

삼각산·금강산·구월산·지리산 등을 비롯한 명산대천과 동남쪽 바닷가 절경을 두루 답사하였고,

평양·경주·개성 등 옛 사적의 자취를 일일이 밟았다. 이는 그가 비록 뜻을 세상에 펼치지는

못했지만 가슴 속에 큰 기상을 가득 담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나라 안을 두루 돌며 가슴 속 큰 기상을 달랬던 이시선은 향리의 숲속에

송월재라는 3칸짜리 작은 서재를 짓고는 두문불출한 채 독서와 학문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송월재 방 1칸 사방에 서가를 두르고 책상 하나만을 들여 놓은 채 독서에 몰두했다.

잠은 언제나 두 식경 정도만 잤고, 음식은 흰죽으로 아침저녁으로 두 끼만 먹었다.

한겨울이 돼도 화롯불을 쬐지 않았고, 여름에 아무리 무더워도 부채질을 하지 않았다.

 

이시선은 늘 제자들에게 “선비의 행실은 ‘마음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불괴심(不愧心)’ 3자에 지나지 않는다.[士之爲行, 不過不愧心三字]”고 하여,

선비의 양심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의 평생의 신조이자 학문 정신이기도 했다.

그는 남달리 건강하여 91세라는 장수를 누렸는데, 자제들에게

“몸가짐을 반드시 삼가고, 벗 사귀는 일을 반드시 살펴서 하고,

혼인은 때맞추어 하라.”고 말을 남기고 운명했다.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

한산군(韓山君) 이정(李挺)의 아버지는 우산군(牛山君) 이종(李踵),

조부는 온령군(溫寧君) 이정(李程), 증조부는 태종 이방원이다.

 

한산군의 둘째 형인 무풍군 이총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아버지 이종과 아들 6형제 모두 절도로 유배되었다가

무풍군 이총은 1504년에 아버지와 5형제들은 1506년(연산군 12)에

모두 사사되었으며, 그 후 순종 때 신원이 회복되었다.

 

한산군종택은 경기도 양주에 있던것을 근래에 이곳으로 이거하여

새로 지은 것이며, 주변에 4대손 추만 이영기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여 지은 영모당과 사덕정이 있다.

 

 

 

 

영모당(永慕堂)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인

호산(毫山) 이장(1696-1737)이 건립한 정자인데, 1886년에 중수하였다.

영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운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사당(祠堂)

 

 

 

 

사덕정(俟德亭)

사덕정은 추만 이영기(1583∼1661) 선생이 덕을 닦고 선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1641년 처음 지은 건물은 1863년과(철종 14)

1928년에 각각 보수공사를 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고,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루방을 두었다. 평면상으로 볼 때는

매우 개방적인 듯 보이나, 좌·우로 들어열개문을 달아

외견상 폐쇄적인 모습으로 달라지게 했으며,

필요에 따라 방과 마루를 넓힐 수 있게 하였다.

 

俟德亭, 덕있는 자를 기다리는 정자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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