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봉화군

오현교 & 와선정(臥仙亭)

자즐보 2013. 5. 28. 14:49

 

 

오현교(五賢橋)

 

병자호란(1636년)에 벼슬도 버리고 태백산 아래 춘양에 은거하면서

대명절의를 지켜 온 태백오현의 덕을 기리고 교유회동(交遊 會同)의 정을 추모하기 위하여

봉화군에서 와선정 입구에 이 다리를 놓고 오현교라고 이름지었다.

 

 

 

 

 

 

와선정(臥仙亭)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골띠마을에 위치한 와선정은  문수산 동록에서 발원한

초계수(草溪水)가 쉼없이 굽이 흘러 내리는 초계동의 골짜기는 옛부터 그 수려함과 절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아늑하고 수려한 골짜기의 한곳을 차지하고 들어선

와선정은 그야말로 신선이 누워 노닐만한 곳이다.

 

이곳은1636년(인조 4) 병자호란이 항복의 치욕으로 끝나자 벼슬을 버리고

두메산골인 이곳 태백산 아래에 묻혔던 태백5현이 소요하던 곳이다.

태백오현은 잠은(潛隱) 강흡(姜恰, 1602~1671), 각금당(覺今堂) 심장세(沈長世, 1594~1660),

포옹(抱翁) 정양(鄭瀁, 1600~1668), 손우당(遜愚堂) 홍석(洪錫, 1604~1680),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1595~1654)으로 잠은은 법전의 버쟁이에 은거했으며

각금당은 모래골에, 포옹은 춘양 도심촌에, 손우당은 춘양 소도리에, 두곡은 봉성 뒤디물에

은거하였는데 그들이 은거 하던 곳의 거리는 서로 10리에서 30리 안 밖이었다.

 

 

이들은 서로 지근거리에 살면서 울분을 달래며 우의를 다졌다.

와선정은 태백오현의 대표적인 소요지이다. 와선정은 갖출 것은 다 갖춘 정자이다.

은폭(銀瀑)이라는 5m남짓한 폭포가 사시장철 정자를 지키고 있고 사덕암( 德巖) 바위위엔

늙은 노송의 그림자리가 언제나 내려 앉아 있다.

와선대 위에 걸터앉은 와선정은 사덕암 바위를 타고 흐르는 은빛폭포(사덕암 폭포)와

눈빛을 마주보고 있으며 높이 또한 정자와 수평을 이루고 있다. 와선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자의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

 

 

 

와선정의 입각문을 들어서면...

 

 

정자의 후면으로 내려간다.

 

 

정자 앞에는 바로 계곡이라 좁은 공간이 허용된다.

 

 

 

 

 

방은 없고 대청마루만 있다.

전면과 측면은 들어열개문으로 달고 뒷면은 판문을 달았다.

 

 

 

전면문을 접어서 들어 올리니

싱그러운 자연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가득이다.

 

 

와선정에 서서 사덕암폭포로 난 문을 열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금새라도 은빛 폭포에서

일어나는 푸른 물빛이 가슴을 파고 들것만 같다. 물은 사람의 뜻을 비우게 하고,

꽃은 사람들을 운치있게 하고, 돌은 사람의 뜻을 강하게 하고, 눈은 삶의 뜻을 넓게하고,

달은 사람의 뜻을 외롭게 한다지만 와선정에서 은빛폭포인 사덕암 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맑은 폭포수에 눈은 멀고, 소탐스런 물소리에 귀는 멀어,

발길조차 옮길 수 없으니 이곳 와선정은 분명 신선이 사는 곳인 모양이다.

태백오현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년 1회씩 회동 수계(修계)하고 있다.

와선정 정자 안에 들어가 눈이라도 감고 있노라면 금새 어느 옛 시인의 싯구가 떠오른다.

“나의 방을 드나드는 것은 오직 맑은 바람뿐이고 나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밝은 달이 있을 뿐이다.”

와선정은 그렇게 자연속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 자신을 가지라고 손짓하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