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봉화군

삼계서원(三溪書院)

자즐보 2012. 9. 23. 21:01

 

 

 삼계서원(三溪書院)

(경북 문화재자료 제417호)

 

과거 닭실마을로 오르는 초입부분 우측편에 자리하고 있는 삼계서원은

조선 중종때 명신 충재 권벌(1478∼154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당시 안동부사였던 김우옹이 조선 선조 21년(1588)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조선 선조 31년(1601)에 한강 정구(鄭逑)가 사당을 충정공사(忠定公祠),

당호를 정일당(精一堂), 동재를 사무사(思無邪), 서재를 모불경(母不敬),

정문을 환성문(喚惺門), 문루를 관물루(觀物樓)라 각각 명명하였다.

그리고 현종 1년(1660)에 삼계서원으로 사액받았다.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에 따라 충정공사·환성문·관물루가 훼철되었다가

1951년에 복원하였다. 권벌은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명종 2년(1547)에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평안도 삭주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에 그 곳에서 죽었다.

 

서원의 배치는 앞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서원 출입은 전면에 자리하고 있는 중층의 관물루 아래에 설치된

환성문으로 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강당이 자리하고

전면 좌우에 동·서재가 있다. 강당 우측으로 돌아들면 토담장으로 공간이 구획된

제향공간인 사당(충정공사)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재 좌측편에 서원을 관리하는

관리사가 대문채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동재 전면 우측에는 1906년

사림에서 세웠다는 신도비와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봉화 삼계서원은 정연한 전학후묘의 배치법을 지니고 있으며 공간의 위계성이 돋보인다.

관물루와 사당은 복원된 건물로 당시의 모습은 지니지 못하고 있으나 동재와 서재에서

당시의 모습을 부분적이나마 찾을 수 있다. 또한 닭실마을과 연계되는 삼계서원의

위치와 충재선생의 인물사적 측면과 더불어 고려할 때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관물루(觀物樓)와 출입문인 환성문(喚惺門)

 

 

삼계서원과 동재.서재

 

 

삼계서원, 전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1칸은 온돌방, 3칸은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계서원 편액과 강당인 정일당(精一堂) 편액

 

 

 동재, 사무사재(思無邪齋)

 

 

 

서재, 모불경재(母不敬齊齋)

 

 

 

사당, 충정공사(忠定公祠)

 

 

 

 

충재 권벌선생 삼계서원 묘허비

 

 

 

 

삼계서원 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