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안동 불천위

계암 김 영(1577∼1641)

자즐보 2011. 12. 10. 10:42

 

계암 김 영(1577∼1641)

 

공은 이조의 문신으로 자는 자준, 호는 계암, 본관은 광산이다.

1577년 설월당 김부륜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안 출신으로 임진왜란때 16세의 나이로 종군하였고 1612년(광해군4)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고, 이어 1615년(광해군7) 주서가 되었다.

 

1618년(광해군10)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어 윤기가 끊어짐을 보고 공은 두문 불출하였다.

공과 서로 아는자로서 시의에 아부한 자가 문전에 이르러 보기를 청하거늘 공은 거절하고 보지

않았다. 그후 수년에 승정원에서 일기를 닦으라고 독촉하거늘 공이 부득이 서울 성내에 이르러

승정원 일기를 수기하여 올리고 궁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돌아갔다.

1623년 인조반정후 조정에서 공이 홀로 탁류중에 홀연히 서 있었다하여 특진하여 6품계를 서임하고 사헌부 지평을 제수하니 부소 도중에 병으로 향리로 돌아갔다.

이어 장령.집의.보덕.헌납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家法이 엄하여 자제들이 시립하여 엄한, 성서라도 감히 물러가지 못하였다.

수엄 류공, 진이 공을 방문하여 유숙하며 서로 담화하고 술을 마실 때 밤이 깊어도 시측하는 자가 없는지라 류공이 괴이하게 여기더니 취침에 앞서 아들 임을 부르니 네 아들이 동시에 대답하니

모두가 병풍밖에 시립하여 마치 사람이 없는것 같았으며 명하여 들어오라 하지 않으면 감히

들어오지 아니하니 류공이 탄복하였다.

 
1641년(인조 19)에 별세하니 수가 65세이다. 숙종조에 정신의 진백함으로 인하여 특히 도승지가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으로 내려지고 하지하여 "지조의 견확함과 풍절의 고상함이 사림의 모범이

된다"하였다.

 

▼ 와룡면 군자마을의 계암정과 계암선생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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