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안동 불천위

제산 김성탁(1684~1747)

자즐보 2011. 12. 10. 00:37

 

제산 김성탁(1684~1747)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진백(振伯), 호는 제산(霽山). 할아버지는 생원 김방렬(金邦烈),

아버지는 김태중(金泰重),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호군 김여만(金如萬)의 딸이다.

* 활동사항

김성탁영양군 청기면에서 태어났으나 선조들은 모두 안동시 임하면 천진리에 세거하였다.

6대조인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별업(別業)이 이곳 영양 청기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김태중이 잠시 이곳에 우거하였으나 이후 다시 안동에서 주로 거주하였다.

김성탁은 어려서부터 문장에 통달하여 인근의 각광을 받았다. 17세에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아울러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밀암(密庵) 이재(李栽)에게도 배웠으며, 고재(顧齋) 이만(李槾)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안무사(按撫使) 박사수(朴師洙)의 초청을 받아

용와(慵窩) 류승현(柳升鉉), 강좌(江左) 권만(權萬) 등과 창의하여 토역문(討逆文)을 지어

각지 유문(儒門)에 보내 의병 가담을 적극 권하였다.

그 공로로 안핵사(按覈使)의 천거로 참봉이 되었다.

1734년 어사 박문수(朴文秀)와 이조판서 조현명(趙顯命)의 추천으로 다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 감진어사(監賑御史) 이종백(李宗白)의 추천으로 사과(司果)에 기용되어 사축서별제(司畜署別提)에 제수되었는데 재임 중 상소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도를 건의하고 왕도정치를 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173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이어서 사간원정언,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737년 이현일의 신원소(伸寃疏)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그 뒤 광양으로 이배되어 배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성탁은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이현일-김성탁-류치명(柳致明)으로 이어지는

퇴계학맥을 이었다.

* 저술 및 작품

문집으는 『제산집(霽山集)』 16권 9책이 있다.

* 묘소는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있다.

* 상훈과 추모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금양서원(錦陽書院)에 스승 이현일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

 

 

 ▼ 제산 김성탁이 18세기 초에 지어 살던 집(경북민속자료 제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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