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문화행사·축제

산수실경 뮤지컬 "왕의 나라"

자즐보 2011. 8. 27. 09:56

 

 

 

왕의 나라

 

가을에 밀려 가는 마지막 여름밤

안동댐 월영교를 건너 "왕의 나라"로~~~ 

 

고려의 제31대 공민왕(1330~1374년, 재위기간 1351.10~1374.9)은

1361년(공민왕 10) 10월에 홍건적이 10만의 대군으로 고려를 침공하여

개경이 함락되자 경기도 광주를 거쳐 12월 안동(당시 )에 도착한다.

공민왕은 정세운()을 총병관()으로 임명하여 홍건적 토벌의 명을 내린다.

 

1362년 1월이 되자 총병관 정세운은 이방실·안우·김득배() 등 장군들과 함께

군을 수습하여 홍건적을 크게 무찔러 개경을 수복하고 난을 평정하였고,

공민왕은 안동에서의 70여일간 피난생활을 끝내고 1362년 2월에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뮤지컬 '왕의 나라'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안동에서의 70일을 다루고 있다. 안동을 주된 무대로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권 행·김선평·장정필 삼태사(三太師)와  

공민왕의 몽진을 비롯해 왕의 파천을 도운 손홍량,호위무사 홍언박과 여랑 등

안동 역사의 뿌리가 됐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KBS드라마 촬영장 안동민속촌 성곽

왕의 나라 山水實景뮤지컬 무대 

 

 

 

 

제1막, 개국, 하늘이 열리다.

 

하늘이 열리는 빛과 소리,

고려 개국의 찬란한 이미지가 하늘위에 수 놓이고... 

 

빛과 함께 장엄한 역사가 열리는 음악이 흐르면서...

 

북소리와 함성, 700년 전의 그 소리에 고려가 깨어난다.

고려(高麗),918년 무인년 6월 병진일 왕건에 의해 개국되었다. 

 

고려의 백성들이여, 깨어나 일어나라~~~

 

세명의 무사 등장, 누구일까??? 

 

고려 삼태사(三太師)들...

이들은 안동지방(신라 고창군)의 성주와 호족들로 고려개국 초기 태조 왕건을 도와

병산전투(안동 와룡면 소재)에서 후백제의 견훤군을 대파하고 승리함으로써

왕건이 태사의 벼슬을 내린 인물들이다.

 

가운데=김선평(고창군 성주,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

왼편=권 행(지방호족, 삼중대광삼한벽상아부공신태사)

오른편=장정필(지방호족, 삼중대광삼한벽상아부공신태사)

 

이렇게 고려는 지방호족 세력의 도움으로 빠르게 강성해 지면서

신라와 후백제로 부터 항복을 받고 936년 드디어 민족통일의 대업을 달성했다. 

 

 

 

제2막, 혼돈

 

공민왕(제31대, 재위기간:1351년10월~1374년9월)은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고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한다.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위기를 느낀 판삼사사 조일신은 김용 등과 함께... 

 

홍건적을 끌어 들여 고려를 침략케하는 음모를 꾸민다.

 

홍건적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왕의 호위무사 홍언박, 그리고 홍언박의 호위무사 여랑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홍언박은 여랑을 고향으로(마뜰,안동 용상동) 피신시킨다. 

 

1361년 10월(공민왕 10년)

10만의 홍건적이 침입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몽진길(1361년 12월)에 오르게 된다.

왕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제3막, 진퇴유곡(進退維谷)

 

경기도 광주를 거쳐 1361년 12월 안동(당시 )으로 몽진 중

언제 홍건적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앞에는 강물(안동 송야천)이

가로 막혀 있으니, 아~어이해야하나...  

 

그러나 고려의 충신으로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351년 퇴직하여

고향(안동 일직)에 와 있던 손홍량(1287~1379)이 공민왕 일행을 맞이하며,  

 

부녀자들이 모여 강에 등을 굽히고 인교(놋다리,경북무형문화재 제7호)를

만들어 왕과 왕비를 무사히 건너게 한다. 

 

손홍량은 퇴직 11년 만에 74세의 늙은 몸으로

왕을 맞아 가까이 모시면서 충절을 바친다. 

 

안동에 피신해 있던 여랑은 왕을 호위해 온 홍언박을

다시 만났으나 애틋한 사랑을 나누기도 전에...

 

 

뒤쫒아 온 홍건적과 전투를 벌여야 했다.

 

대혈전 끝에 홍건적을 격퇴하고...

 

 

제4막, 왕이 오시네...

 

안어대동(安於大東) 민중이 왕이 되는 나라... 

왕이 가장 편안하다고 여겼던 곳, 동쪽의 복된 땅에 왕이 오시네~ 

 

마을 사람들은 왕을 맞이 할 준비에 분주하면서

수선을 떨며 해학이 넘치는 잔치판을 벌인다.

 

드디어, 안어대동의 성문이 열리고 왕과 왕비가 등장한다.

 

공민왕은 안동 백성들의 공을 치하하며 고마움을 표하고...  

 

손홍량은 왕이 이곳에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하며...

 

왕에게 충절을 다짐한다.

 

 

제5막, 권토중래(捲土重來)

 

공민왕은 안동에 머물며 영호루 아래에서 군사훈련을 시찰하던 중... 

 

여자의 몸으로 홍건적과 맞서 싸우던 여랑을 발견하고

그 공을 치하하며 자신의 호위무사로 임명한다. 

 

홍건적을 격퇴하고 다시 만난 홍언박과 여랑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며...

 

부부가되어 검머리 파뿌리되도록 함께하자 언약한다.

 

 

제6막, 단심가(丹心歌)

 

조일신과 김용 일당들이 반란군을 지휘하여 안어대동으로 들이 닥친다.

주인을 물려는 검은 승냥이 들은 왕과 왕비를 협박하고...

 

왕의 호위무사들은 이들과 맞서 대결전을 벌이며...

 

홍언박과 여랑도 목숨을 잃는 결사항전으로 반란군을 격퇴한다. 

 

 

제7막, 왕의 나라

 

74세의 노신 손홍량은 죽음을 불사하고

군사를 지휘하여 홍건적과 전투를 벌이며... 

 

1362년 1월 총병관 정세운은 이방실·안우·김득배() 등 장군들과 함께

군을 수습하여 홍건적을 크게 무찔러 개경을 수복하고 난을 평정한다. 

 

이로써 공민왕은 70일간의 안동 몽진을 끝내고 개경으로 환도하게되니...

 

그 70일의 안동은 왕의 나라였으며,

역사는 "안어대동"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

 

700년 전의 고려를 재현한 200여 명의 출연자들과 관람객들의 만남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리며, 옛 역사의 한토막을 기억해 둔다.

 

2천석의 자리를 입추의 여지없이 꽉메운 관람객들...

 

 

-THE END-

 

왕의 나라 주인공 손홍량 선생의 후손, 일직 손씨 26세손인

손호영 김관용 도지사에게 공민왕이 손홍량 선생에게 

하사했다는 구절산호용장 지팡이를 복원해 선물하고 있다.

 

- 손홍량(孫洪亮, 1287~1379)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일직(一直)이다.

본래의 성은 순씨였으나 현종의 이름과 같아서 그것을 피해

5대조 응 때 손씨로 고쳤다. 호는 죽석(竹石)이다.

고려 제26대 충선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충숙, 충혜 양조에 벼슬하고

1348년(충목왕 4) 첨의평리로서 하정사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349년(충정왕 1) 추성수의동덕찬화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찬성사를 거쳐

판삼사사가 되었다. 이듬해 복천부원군에 봉해졌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난으로 왕이 복주(지금의 안동)로 피난할 때

75세의 노구로 중도에 평복으로 왕을 나아가 맞이하여 난국에 대한 수습책을 진언하니,

공민왕이 “그대는 참으로 일직의 사람[子誠一直之人]”이라고 치하했다고 한다.

 
이듬해 난이 평정되어 왕이 개경으로 환도하자 공이 상경하여 난의 평정을 축하하였다.

왕은 “늙을수록 더욱 도탑다.”하며 공의 충성을 찬탄하고 친히 공의 영정을 그려 하사했으며,

산호 지팡이와 안석 한 자리를 하사하며 “경의 두 아들도 나를 섬기도록 하라.”고 분부했다.

 
그때 백문보, 이인복, 이색, 이달충 등 조야의 중신, 명류들이 시와 서로써

공의 덕업과 영화를 찬탄했으며 개경의 인사들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공을 전송했다고 한다.

은퇴한 지 29년만인 1379년(우왕 5) 일직 고향집에서 93세에 돌아가셨다.

나라에서는 적성군에 봉하고 시호는 정평(靖平)으로 내렸다. 공이 은퇴한 지 13년 만에

홍건적의 난이 있었고, 공이 돌아가신 지 14년만에 고려가 망하였다.

그래서 공의 진퇴와 존몰에 나라의 평안과 위태로움이 관계되었다고 일컬어졌다.

공민왕이 손수 그려 하사한 공의 초상화는 안동 임하사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공의 9대손인 손시눌이 밀양의 재약산에 안영암을 짓고 옮겨 봉안했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유실되었다가 두류산 벽송사에 수장된 것을 1972년 공의 22대손 손특수,

손태규가 밀양 세덕사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공의 유적은 거의 인몰되어 전하지 않으며, 옛 마을 송리에 공이 손수 심은 은행나무와

마시던 우물이 있으며, 마을 앞에 유허비가 있는데 비명은 눌은 이광정이 짓고

음기는 조현명, 서명균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