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임하면

오류헌,이우당종택,국탄댁 답사

자즐보 2011. 3. 12. 02:31

답사일 2011년3월11일

 

 

오류헌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 김방걸의 셋째 아들로 좌승지에 증직된

목와(木窩) 김원중(1658~1724)임동면 지례동 천곡으로 분가할 때 지은 가옥으로

13대째 내려 살았다. ‘오류헌(五柳軒)’이라는 당호는 현 소유자 김원택의 증조부인

김정환(1827~1922)의 아호에서 따 온 것이다.

 

오류헌은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 등이 ‘ㅁ’자형을 이루며 앉아 있다.

안채 오른쪽에 방앗간채가 있고, 사랑 마당 왼쪽 한 켠에는 외양간을 두었으며,

담 밖 뒤쪽 낮은 언덕에 사당을 마련하였다. 서쪽으로 경사져 올라간 대지 주위에

방형(方形)으로 토담을 쌓고 동남향한 5칸 대문채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내었다.

문간에는 중턱 대문을 달았고 좌우에 방과 고방을 각각 1칸씩 대칭으로 배치하였는데,

외벽은 검은색이 도는 냇돌을 백회로 곱게 화방 쌓기를 하여 멋을 내었다.

대문간에 들어서면 넓은 사랑 마당을 건너서 중문간이 있는 사랑채가 뒤쪽의 안채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의 정면 5칸에는 툇마루를 깔았고,

뒤로 좌측의 중문간 쪽에서부터 2칸통 사랑방과 2칸통 사랑마루방에 이어

1칸 감실방을 두었는데 감실방 앞의 툇마루만은 1단 더 높이고 헌함(軒檻)을 돌려

누마루처럼 꾸몄다. 사랑마루방은 5량가이고 종보 위에 둥근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올렸다.

사랑방 뒤에는 부속된 마루방과 안마당으로 통하는 샛마루를 두었고,

뒤에는 샛방과 책방을 배치하였다. 감실방 뒤에도 1칸을 두어 벽감(壁龕)을 설치하였는데

줄을 당겨서 상하로 승강할 수 있게 하였다. 샛마루와 샛방 뒤에는 모방과 고방을 두어

안마당에서 쓰도록 하였다. 사랑채 좌측에 접하여 1단 낮은 지붕으로 구성된 중문간채는

사랑방에 접한 중문간 좌측으로 아랫방 2칸과 아랫마루 1칸 순으로 배열되었다.

안채는 안마당을 향한 3칸 대청을 중심으로 2칸 안방과 그 앞에 2칸 부엌이 앞으로 뻗어

좌익사(左翼舍)를 이루고, 우측에는 상방 1칸과 그 앞에 통래간 1칸이 있다.

안방 부엌의 부뚜막 윗벽에는 5개소에 벽돌 크기의 네모난 구멍을 내어

구들 골이 막혔을 때 뚫을 수 있게 하였다. 자연석 초석 위에 방주를 세웠고

3량가로 각대공 위에 종도리를 얹었다.

안채는 170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는 1920년에 크게 고쳐 지은 것이다.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9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크기의 솟을대문채

외벽(外壁)은 냇돌을 방화벽(防火壁)처럼 백회(白灰)로 곱게 쌓아 올렸다.

 

 

대문에 걸려 있는 "오류헌"현판

 

 

 

큰사랑채, 정면5칸 측면2칸 겹집으로 방3칸 마루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느 집과 다른 점은 맨 끝칸에 툇마루를 확장한 누마루를 설치하고

그 안쪽에 방을 들였는데 이 방은 집주인이 거처하며 제사등 의례용으로 사용한다.

 

 

큰사랑채 끝에 누마루에 계자난간을 돌리고 안으로 방을 들여 놓았다.

 

 

작은 사랑채는 큰사랑채에 이어 마루1칸과 방2칸에 쪽마루를 달았다.

큰사랑채와 작은 사랑채 중간에 안채로 들어 가는 중문이 있다. 

 

 

작은사랑채 옆으로 안채로 출입하는 쪽문도 있다.

 

 

사랑채 전체 모습

 

 

안채, 정면 3칸의 대청 "목와고택"현판이 걸려 있다. 

오른쪽 날개채에 안방과 부엌이 있다.

 

 

안채의 왼쪽 날개채로 방2칸과 광1칸으로 되어 있으며 며느리가 사용하는 곳이다.

 

 

사당으로 들어 가는 중문 

 

 

제사때 사용하는 주사 

 

 

사당 

 

 

위패를 모신 "영모재" 

 

 

 

 

이우당종택

 

이우당 종택은 1640년(인조 18) 이우당 권환(1580~1652)의 아들 권익시가 건립하였다.

사랑채는 1773년(영조 49) 정침을 보수하면서 지었다. 1963년 건물 전체를 보수하였고,

1994년 기존 콘크리트 기단을 해체하여 자연석 기단을 설치하고 부식된 목재와

기와를 교체하여 부분적으로 보수하였다.

마을의 모든 건물이 북향인 데 반해 이 집만 북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동남쪽에 위치한 해발 550m의 약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가

곡성산(曲城山)을 이루며 마을 전체를 동·남·서의 세 방향으로 둘러싸고 있어

반변천이 흐르는 북동쪽으로만 시야가 열려 있다.

이 집은 이러한 지형에 적응하여 곡성산을 뒤로 하고 북동향으로 좌정하여

앞들과 반변천 건너 햇볕 밝은 안산(案山)과 멀리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조산(祖山)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랑채는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이며 기단을 높게 쌓고 지은 팔작지붕이다. 

북동향인 정면 쪽은 큰 마루방으로 꾸몄으며 둘레에는 헌함(軒檻)을 두르고

전면 가운데 쪽에 계단을 두어 출입하게 하였다. 동남쪽에는 온돌방 2칸을 배치하여

밝고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의 왼쪽 측면,,,

 

 

 

사랑채 좌측으로 ‘ㅡ’자형 4칸 중문간채가 있다.

 

 

 

‘ㅁ’자형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6칸이며,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청의 좌측에는 2.5칸통의 안방이 접하였고 그 앞쪽으로 정지·아랫방·아랫정지 등이

연달아 놓여 있다. 대청 우측에는 윗방이 있고 그 앞쪽으로 마루와 아랫방·북쪽 정지·광이

놓여 있다. 앞쪽에는 좌측의 아랫정지와 한 공간으로 터진 중문간(中門間)과

뒤주·고방을 1칸씩 두었다.

 

 

 

 

 

사랑채 내부 

 

사랑채에서 서북쪽으로 난 문을 열면 멀리 반변천이 보인다. 

 

 

사랑채와 대문채 전경 

 

 

토석 담장 속에 1칸 크기의 불천위 사당과 3칸통 가묘가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불천위(이우당 권 환) 사당

 

 

3칸통 가묘,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관리인^*^

사당을 지을 때 기둥은 뿌리쪽이 위로 향한단다.

 

 

 

 

 

 국탄댁

 

국탄댁은 1757년(영조 33)에 건립한 가옥으로 김시정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원래 임동면 지례동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1988년 현 위치인로 옮겨 왔다.
김시정(金始精, 1737~1805)의 가옥이다. 김시정은 본관이 의성이고, 호가 국탄(菊灘)이다.

조선 숙종때 대사간을 지낸 지촌 김방걸의 후손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높은 성과를 이루고

인근의 선비와 덕으로 교류하였다.

 

 

 

사랑채, 안채 등으로 구성된 사대부 가옥이다.

집의 평면은 ‘ㅁ’자형처럼 보이나 사실은 ‘ㄷ’자형인 안채와 ‘ㅡ’자형인 사랑채를

결합시킨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가옥을 ‘ㅁ’자형에서 변형된

튼 ‘ㅁ’자형이라고 하여 ‘ㅁ’자형 가옥의 한 종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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