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임청각
고성이씨의 안동 입향조는 조선 세종 때 좌상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 이증으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관직을 버리고 안동으로 낙향하였다.
이증의 세째 아들인 이명도 관직에서 물러나 1519년(중종14) 이곳에
99칸의 큰 규모의 집을 지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로를
마당으로 놓아 일부가 철거되고 현재는 70여 칸이 남아있다.
"임청각"은 도연명의 귀거래서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바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읆조린다"는
시구에서 임청(臨淸) 두 자를 인용하여 정한 택호이며,
이중환의 택리지에 <임청각은 귀래정,영호루와 함께
안동의 명승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집은 영남산 기슭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건물을 배치하여 어느 방에서나 오전 오후 햇빛이 들도록 채광효과를 놓인
배산임수의 전형적 건물이다. 99칸의 큰 집을 한달만에 지었다고
당시 사람들은 <도깨비가 지은 집이다>고 놀라워 했다.
임청각의 대문
대문 안쪽으로 행랑채를 두었다.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의 중문
군자정
군자정은 이증의 아들 형조좌랑 이명이 중종 때 건립한 정자로
평면 구성이 '丁'자형으로 된 조선 중기의 별당형 정자다.
이 정자에는 농암 이현보, 백사 이항복, 한음 이덕형, 율곡 이 이,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제봉 고경명 등 옛 명현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군자정"현판은 퇴계선생이 20세의 약관에 쓴 글씨이다.
군자정에서 안채로 연결되는 중문이다.
군자정에서 본 안채
중문을 들어와서 본 군자정의 측면
임청각의 안채, 마당 가운데 우물이 있다.
임청각의 사당
임청각이 낳은 독립운동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었던 석주 이상룡과
동생, 아들,손자,조카 등 3대에 걸쳐 9명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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