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볼 수 없게된 임청각 앞 회화나무
안동의 신목으로 불려졌던 임청각 앞 석주로 2차선 가운데에 있던
300년 이상을 살아 온 회화나무 이젠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네요.
원래 이 나무는 임청각 99칸 집의 큰대문 앞에 있던 나무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의도적으로 지맥을 끊기 위해 임청각 앞으로 철길을 내면서
회나무와 임청각은 철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임청각이 보물로 지정된 것은 단순히 집만 보물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주위의 환경도 당연히 같은 문화재로 봐야 합니다.
특히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임청각 회화나무는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이 가족과 함께
독립을 위해 만주로 떠날 때도 이 나무 아래서 출발 하셨고,
임청각에서 공부하던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갈 때는 기도를 하고 떠났고,
과거급제를 하고 돌아와서는 청.홍 비단을 걸어주어 감사의 뜻을 전했던 학자수(學者樹)입니다.
한말 일제가 불을 질러 안동 시내가 전부 불바다가 되었을 때 시민들이 피신을 했던 곳이며,
6,25 때 폭격으로 사람들이 갈 곳이 없을 때도 이 곳에 모여 생명을 부지 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안동 시내와 용상동을 잇는 개목나루의 행인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던 나무입니다.
이 곳에서 300년 이상을 살아 오면서 안동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지켜 왔던 나무이기에
안동댐 진입로를 개설하면서도 없애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2008년 8월 22일 새벽 3시경 누군가가
이 회화나무를 잘라 버려 안동시민 모두가 애석해 했었지요.
그러나 회화나무는 죽지 않고 싹을 틔우며 또 자라기 시작했지요...
모두들 잘 자라서 크게 번성하리라 기대했을텐데
2010년 8월 3일 오전 5시 40분경 20대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박아서
회하나무는 뿌리채 뽑혀 버려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네요
나무는 죽고 운전자외 1명은 중상...
참 애석하디요
(이 사진은 3일 오후 1시경 이 곳을 지나가다가 현장을 찍한것)
古木의 冥福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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