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탄생지 "인각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고려시대에는 일연(1206~1289)이 생애 마지막 5년을 이 절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찬술하고 입적했다.
신라시대 지방 사찰로는 유례없이 큰 규모의 절이었던 인각사는 조선시대 들어 쇠퇴를 거듭했고,
특히 임진왜란 때 방화로 심하게 훼손됐다. 결국 지금의 인각사는 전각다운 전각 하나 없는,
그저 시골의 한 작은 사찰에 불과하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만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인각사보각국사탑 및 비(보물 제428호)가 있고,
이밖에 법당 앞에 있는 3층석탑과 정조탑(靜照塔) 앞에 있는 석불 등이 있다.
인각사 전경
국사전
명부전,인각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물,,,
산령각
일연학연구소및 종무소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
오른쪽 팔 부분이 훼손되어 속세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
보각국사비
중국의 명필 왕희지의 글씨 1,904자를 하나하나 집자해 25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비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고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보기드문 명품으로 중국에까지 소문이 나 그 탁본이 사신의 선물로 큰 인기를
끄는 바람에 무절제한 탁본으로 서서히 마멸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에 의해 땅바닥에 엎어진 채 탁본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인각사비는 결국 1630년 이전에 여러 조각으로 깨지고 만다.
지나친 탁본의 노역에 시달리던 민초의 고의적 타격에 의한 것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보각국사정조지탑
인각사 석불좌상
일연선사 생애관
인각사 앞 위천과 학소대
위천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근 학소대, 그 옛날에 백학이 둥지를 치고
서식했었다는 이야기가 실감날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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