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군위군

육지속 제주도 "한밤마을"

자즐보 2010. 11. 18. 23:23

 

 

 

 

육지 속 제주도 군위 "한밤마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은 팔공산의 북사면에 위치해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천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마을이며,

"산속에 들이 열리어 큰 논이 있다"하여 한바미(한밤,대율)라고 한다.

 

이 마을은 부림홍씨들이 고려 중엽부터 입향하여 대성벌족을 이루며

천년의 세월을 살아 온 곳으로, 현재 여러 성씨들이 살고 있지만

부림홍씨가 마을 주민의 약 60%나 된다. 

 

한밤마을은 옛부터 팔공산에서 쏟아져 내려 온 바위와 돌들을

일구며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돌로 집담장을 두르게 되어

천년 세월을 지내 온 돌담이 진풍경이며 육지 속의 제주도라 일컬는다.

 

 

대율교 건너 마을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 솔밭과 멀리 팔공산

 

 

마을어귀 동신제단 솔밭의 한밤마을 안내도

 

 

마을어귀를 지나 뒤돌아 본 전경

푸른 솔나무와 붉게 물든 나뭇닢이 이색적이다...

 

 

마을의 보호수 느티나무, 바로 옆에 대율초등학교가 있다. 

 

 

 

(좌)송강 홍천뢰 장군 추모비 : 임진왜란때 의병을 모아 신령,

영천 등에서 전공을 세움, 1973년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비문이다.

 

(우)혼암 홍경승 기적비 : 종숙 홍천뢰와 함께 의병활동 

 

 

활원정, 근래에 지은 정자인지 별다른 설명이 없다...

 

 

 

이정표를 따라 골목길로 들어서니 돌담길,,,

천년세월의 풍상이 느껴지고 너무 정겹고 아름답다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니 넓은 장소에 고건물들이 있다.

여기가 옛부터 마을의 중심부였으리라 짐작해 보며,,, 

 

 

대율리 대청

조선전기에 건립되어 임진란 때 소실, 인조10년(1632)에 중창된 학사(學舍)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곳 한밤마을은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지 였고 ,

이 대청은 종각 자리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

 옆에 신라시대의 삼존석불이 있는것을 볼때 타당성이 있는것 같다.  

서당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마을 집회장소로사용되고 있다., 

 

 

 

남천고택,,,

상매댁이라고도 하며 부림홍씨 문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가옥이다.

쌍백당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250여년 전 중시조의 19세손 태의 살림집으로

세웠다고 전해오는데 , 헌종2년(1836)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정자처럼 아담하고 예쁜 사랑채, "쌍백당"이라는 당호가 걸려 있다.

 

 

사랑채 뒤 "ㄷ"자형의 안채, 자세히 살펴보니

참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어 옛 선현들의 지혜로움에 탄복이다...

 

 

안채의 측면 그리고 깊은 옛맛이 있을  장단지들,,,

 

 

너무 이쁜 뒷마당 탐나더라,,,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도 아담하니 이뿌다...

 

 

율리정사(경의재)

이건물은 조선 정조 을해년 1779년 남천(南川)공이 족친들과 힘을 모아

공당을 건립하고 이숙(里塾)이라 불렀다. 이숙이란 마을학교라는 뜻이다.

 향교가 지방공립학교라면 이숙은 사립학교역활을 했던 곳이다.

그후 이곳은 여러가지 용도롤 사용되어 오다가

현재는 휘 여진공을 기리는 정자로 사용되고 있다.

 

 

천년의 돌담길이 마을에 총 4km나 된단다. 줄자라도 있으면 재 볼텐데ㅎㅎㅎ

 

 

돌담곁에 산수유, 너무 아름다워 찍~~~

 

 

부림홍씨 종택

부림홍씨 종택에는 경절당을 비롯하여 중시조 홍노선생의 영위를 모신 사당과

제전청이 있다. 경재 홍노(1366년) 선생은 1390년(공양왕1년)에 별과에 급제

문하사인에 올랐으며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국정이 혼란해지자 대율리로

낙향하여 은거. 고려가 망하자 탄식하며 27세의 약관의 나이에 운명했다.

 

 

 

성처럼 높이 돌담장을 두른 산남재,,, 

 

 

그리고 동림재,,, 

 

 

이런 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

 

 

 

양산서원

이 서원은 정조10년(1786년) 설립된 지방교육기관이었으며 

부림홍씨의 세거지로 홍노선생과 허백 홍귀달선생, 대제학을 지낸

홍충언 선생의 절조 와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분의 영위를 봉안하였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7년 강당을 중건하고

1989년에 중수및 장판각을 지어 휘찬려사 고려목판을 보존하고있다. 

 

 

 

대율사 "석불입상" 보물(제988호)이란다.

9세기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단다...

 

 

 

 

이 마을에서 2km 정도 가면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군위 삼존석굴(국보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