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봉화군

야옹정,구산서당,우직정,종선정,,,

자즐보 2010. 4. 14. 22:03

 

 

 

 

 상운면 구천리(귀내마을)

 

 

 

야옹정(野翁亭)

야옹 전응방(1491∼1554)이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세운 정자로

도덕과 학문을 강의하고 토론하던 곳이다. 전응방은 중종 때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단종 때 왕위찬탈의 추함을 몸소 겪은 할아버지 휴계 전희철의 유언을 받들어 관직에 뜻을 버리고

산수 좋은 이곳에 야옹정을 세워 도덕과 학문을 수련하였으며, 퇴계 이황과 자주 만나

도학을 강론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현판은 퇴계 이황이 직접 쓴 것이다.

 

 

 

 

 

 

 

 

 

구산서당(龜山書堂) 

옥천 전씨 구암 전수동(1791∼1862)이 문중 사람들과 함께 후진양성을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서당이다. 초·중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경내 건물로는 교육 장소인

서당과 관리인의 숙소로 이용되던 주사가 있다. 서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마루를,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건물 앞으로는 마루를 덧대고 끝에 난간을 둘렀다.

건물 규모는 작으나 지붕의 곡선이 간략한 건물 구조와 어우러져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우직정(愚直亭)

봉익대부 밀직부사 판도판서 상호군(奉翊大夫 密直副使 版圖判書 上護軍)

관성군 전유(管城君 全侑)와 상장군부제학(上將軍副提學) 휴계 전희철(休溪 全希哲),

야옹 전응방(野翁 全應房)의 후손인 우직 전병열(愚直 全秉烈)이 특수계층만의

교육제도를 타파하고 사회교육 및 인간교육을 통하여 사회를 바로 잡아보자는 뜻으로

사림의 반발을 무릅쓰고 문맹자를 없애고자 노력을 하면서 이곳에 정자를 건립하고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이면 계급신분을 가리지 않고 무료로 강학하였다.

 

 

 

 

 종선정(種善亭)

금응석 선생(1508∼1583)의 선행을 감사하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세운 정자이다.

당시는 오랫동안 가뭄과 흉년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땅에 뿌릴 씨 조차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 때 금응석 선생은 굶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농민에게는 무료로 씨를 주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그것을 알게 된 퇴계 이황 선생은 이 정자를 ‘종선정’이라 부르고

직접 쓴 현판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는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ㅡ자형이며, 출입구는 뒷쪽에 있고 온돌방과 대청마루 시설이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