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문화·유적지

안동 문화유산 - 국보

자즐보 2015. 11. 17. 13:41

 

 

 

1.봉정사 극락전 (鳳停寺 極樂殿) - 국보 제15호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 소재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자료출처:안동관광정보센터 / 진사 자즐보)

 

 

 

2.법흥사지 칠층전탑 - 국보 제16호

안동시 법흥동 8-1번지 소재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탑신은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자료출처:안동관광정보센터 / 진사 자즐보)

 

 

 

3.하외탈 및 병산탈 - 국보 제121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하회마을과 그 이웃인 병산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탈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놀이 가면이다.

하회탈은 11개가 전해지는데 주지 2개,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탈이 있으며, 병산탈은 현재 2개가 남아 있다.

한국의 가면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든 것이 많아서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 해 탈놀이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하회탈과 병산탈은

드물게 보이는 목조탈이며, 격식과 세련됨을 갖춘 유물이다.

원래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는 별신굿에 쓰이던 것이며,

마을마다 따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탈에 대한 금기나 제약이 매우 엄격했다.

이 탈의 재료는 오리나무이며 그 위에 옻칠을 두겹 세겹으로 칠해 정교한 색을 내고 있다.

턱은 따로 조각되어 있어서, 아래턱을 노끈으로 달아 놀이할 때 움직이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주도록 되어 있다. 하회 가면 중에서도 특히 양반과 백정은

세련된 입체감과 표현기교를 보여주고 있다.

이 탈들의 제작자와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마을의

허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하회마을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허씨가 살았고, 안씨 집안이 들어온 후, 류씨가 조선 전기에 살았다고 기록이 있어

대체로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자료출처:문화재청)

 

 

 

4.징비록(懲毖錄) - 국보 제132호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 한국국학진흥원 소재

 

조선 중기 문신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책이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저술한 시기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유성룡이 조정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지낼 때 전란 중의 득실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및 제해권의 장악에 대한 전황 등이

가장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필사본『징비록』은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류성룡의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 25년(1647)에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또한 이것은 숙종 21년(1695) 일본 경도 야마토야에서도 간행되었으며,

1712년에는 조정에서『징비록』의 일본유출을 금할 정도로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았다.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자료출처:안동관광정보센터)

 

 

 

5.봉정사 대웅전 - 국보 제311호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 소재

 

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들어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료출처:안동관광정보센터 / 진사 자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