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부안동(雄府安東)/문화·유적지

안동 문화유산-사적, 명승, 세계유산

자즐보 2015. 11. 16. 14:12

 

 

 

도산서원(陶山書院) - 사적 제170호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토계리) 소재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료출처 : 안동관광정보센터 / 진사 자즐보)

 

 

병산서원(屛山書院) - 사적 제260호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자료출처 : 안동관광정보센터 / 진사 자즐보)

 

 

백운정 & 개호송 숲 - 명승 제26호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93-1번지 등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한국의 대표적 씨족 촌락인 내앞마을과

개호송, 강 건너편의 백운정(白雲亭) 등이 낙동강의 제1지류인 반변천(半邊川)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자아내는 경승지이다.

백운정(경북 문화재자료 제175호)은 귀봉 김수일(1528~1583)이

그의 아버지 청계 김진으로 부터 땅을 받아 조선 선조 1년(1568년)에 세운 정자로

반변천 강 언덕 위에서 내앞마을과 개호송 숲이 한폭의 경관으로 조망되는

지점에 위치하여 전통적 유교문화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탁월한 조망점 역할을 하고 있는 정자이다.

“내앞마을”은 의성김씨 씨족 촌락 마을로 의성김씨 종택을 비롯하여 보물 2점과

고택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택리지>에 전통 씨족 촌락으로 소개되어 있고, 약300년 전에

제작된 이종악의 <허주산부군수화첩(虛舟山府君水畵帖/半邊川十二景)>에

‘운정풍범(雲亭風帆)’이라는 제목으로 마을 풍광 그림이 남아 있는 등

500여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개호송(開湖松) 숲”은 통례공 만근(通禮公 萬謹)이 조선 성종 무렵에

내앞마을 앞 수구(水口)가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 38년(1605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을 운천 김용 선생의 발의로 다시 조성한 숲이다.

의성김씨 문중에서는 개호금송완의(開湖禁松完議)라는 문중 규약을 만들어

이 숲을 보호해 왔다고 전한다.

이 숲은 내앞마을의 농경지를 보호하고 바람과 물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구막이 숲이며, 완만한 모래사장에 달빛이 비추는 ‘완사명월형(浣沙明月形)’ 혹은

소가 누워 풀을 되새김하는 ‘와우형(臥牛形)’으로 알려져 있는 내앞마을 풍수형국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비보림(裨補林) 역할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보호하여 온 오랜 역사의 마을 숲이다.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강 건너편 백운정과 반변천 수중에

조성되어 있는 반월형 섬 위의 소나무 숲인 개호송 숲, 강가를 따라 조성된 내앞마을,

반변천과 강가의 기암과 단애, 천변 숲이 한 눈에 펼쳐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대표적인 씨족 촌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큰 명승지이다. (자료출처 : 안동관광정보센터 / 진사 자즐보)

 

 

 

 

만휴정 원림 (晩休亭 園林) - 명승 제82호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소재

 

만휴정(경북 문화재자료 제173호)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계행(金係行)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별서로 폭포, 계류, 산림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는 명승지이다.

(자료출처 : 안동관광정보센터 / 진사 자즐보) 

 

 

 

하회마을 - 세계문화유산

안동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자료출처 : 하회마을보존회 / 진사 자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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