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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자즐보 2015. 9. 29. 02:49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경상남도 통영시 세병로 27(문화동) 일원 / 사적 제402호

 

통제영은 1593년(선조16)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직제를 새로 만들어

전라좌수사에게 겸임하게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삼도수군통제영’으로 통칭되며,

약칭은 ‘통영’이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장군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전세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고, 전란이 끝난 뒤에도 거제도 오아포, 고성현 춘원포 등지로 옮겨 다녔다.

1603년(선조36)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통제영을 두룡포(頭龍浦: 현 통영시 문화동)로

정한 이후, 이곳에다 터를 닦고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1605년(선조 38) 음력 7월 14일에는 여황산 남쪽 기슭에 객사인 세병관,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후 1678년(숙종 4) 제57대 통제사 윤천뢰가

영문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높이 약 4.6m, 둘레 약 3.6㎞ 규모의 평산성(平山城)을 쌓았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의 통영성에는 4대문과 2암문 그리고 3포루가 있었고,

세병관을 위시하여 100여 개의 관아가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강점된 뒤

세병관을 제외한 대·소 관아 100여 동의 건물들이 모두 헐렸고, 그 자리에 학교,

법원, 검찰, 세무서 등 건물들이 새로이 들어섰다.

1975년 이후에 세병관 및 주변 지역을 정비하였으나 통제영 건물 중 현존하는 것은

국보 제305호로 지정된 세병관 뿐이며,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受降樓)가  있다.

 

 

삼도수군통제영 안내도 

 

 

 

 

 

망일루(望日樓)

1611년(광해군 3) 제10대 우치적통제사가 세웠으며,

화재로 소실되어 1769년(영조 45) 다시 지었다.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큰 종이 있어 종루라고도 했다.

통제영의 외삼문이며, 현 건물은 2000년 재중건한 것이다.

 

 

 

 

수항루(受降樓)

1677년(숙종 3)에 임진왜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58대 윤천뢰통제사가 통영성 남문 밖에 건립하였으며,

1986년 현위치로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두룡포기사비( 유형문화재 제112호)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이경준통제사의 치적을

기록한 사적비로 1625년(인조 3) 세운것이다.

 

 

 

 

좌청(左廳)

군관과 사병들이 대기하던 건물

 

 

산성청(山城廳)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 등이 근무했던 곳

 

 

 

본영군 영역 

통제사가 제반 의전을 치르던 중심영역으로

외삼문인 망일루, 내삼문인 지과문, 세병관이 있다.

 

 

 

 

 

지과문(止戈門)

세병관으로 출입하는 통제영의 내삼문

 

 

세병관(洗兵館, 국보 제305호)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1605년 이경준통제사가 처음 건립했으며,

1646년 규모를 크게하여 다시 지었고, 1872년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목조건축물 중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이다.

 

 

 

 

 

기삽석통(旗揷石桶)

세병관 앞 뜰에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는 기대를 고정하는

돌기둥으로 1786년(정조 10)에 세운것이다.

 

 

석인(石人)

세병관 뜰에 액막이로 만든것으로 추측하는 석인이다.

 

 

세병관과 잉번청 사이의 협문

 

 

 

잉번청(仍番廳)

통제영 공방의 건물과 물건 등을 지키는 사람들이 근무하던 곳

 

 

 

 

백화당(百和堂)

중국사신 등 손님들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로 1603년(선조 36) 건립

 

 

 

 

선자방(扇子房)

단오절에 임금이 하사하던 부채를 제작하였던 공방

 

 

통제영 12공방

군수품 생산과 민생에 필요한 물품, 조정에 진공품, 헌상품 등을

조달하는 군영내 공방으로,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에서 1593년 시작되었다.

당시 긴박한 전시 사정으로 각종 군수품을 변방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방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1604년(선조 37) 통제영이 두룡포로 옮겨와 창건되고 공방도 번창하여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생산하게 되었으니, 한양을 제외한 지방의 공방중에서는

장인수가 가장 많았고, 품질도 최상급이어서 "통영"이란 지명이 붙은

통영갓, 통영자개, 통영장석, 통영소반, 통영부채 등 각종 공예품은

전국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통제영 12공방은 그 맥이 현재까지 이어져

통영의 전통공예로 계승 발전되어 오고 있다.

현재의 공방 건물들은 2013년 6월 복원된 것이다.

 

 

공내헌(工內軒), 공방을 관리하는 공감의 집무실

 

 

동개방(同箇房) , 활과 화살을 함께 꽂아 넣어 등에 지는 

가죽주머니인 동개와 활을 허리에 꽂는 궁대를 만드는 곳

 

 

석수조(石水槽), 물을 저장하여 자개 등을 갈고 닦는 작업을 하던 곳

 

 

화자방(靴子房), 가죽을 사용하여 신발, 말안장 등을 만들던 곳

 

 

총방(驄房),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유건 등을 만들던 곳 

입자방(笠子房), 흑립이나 벙거지, 삿갓, 패랭이 등을 만들던 곳

 

 

상자방(箱子房), 버들가지 등을 엮어 상자를 만들던 곳

 

 

패부방(貝付房),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들던 곳

 

 

화원방(畵貟房), 각종 지도 및 군사용 장식화를 그렸던 곳

 

 

소목방(小木房),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를 만들던 곳

 

 

공록당(工綠堂), 공고에 딸린 집무공간

 

 

은방(銀房), 금과 은을 세공하여 각종 장신구 제품을 만들던 곳

석방(錫房), 주석과 백동으로 각종 장석을 만드는 곳

 

 

야장방(冶匠房),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 및 각종 철물을 주조하던 곳 

 

 

 

 

 

느티나무, 통제영 창건 당시 심어졌다고 한다. 수령 400년 이상...

 

 

 

통제사비군(統制使碑群)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으로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58기를 4줄로 나란히 세워 둔 것이다.  

 

 

내아군 영역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영역으로 통제영 내 중심에 자리하며

운주당과 경무당, 통제사의 살림집인 내아가 있다.

 

 

 

 

병고(兵庫), 통제영 병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1604년(선조 37)에 처음 건립되었다.

 

 

 

 

운주당(運籌堂), 통제사가 군무를 보는 집무실로 1645년(인조 23)에 건립되었다.

 

 

 

운주당 전면 기둥의 주련 

 

 

경무당(景武堂), 통제사의 작은 집무실

 

 

후원군 영역

운주당 뒤쪽에 자리잡은 후원군은 통제사가 휴식을 하는 장소로 활용한 곳이다.

 

 

득한당(得閑堂), 통제사가 휴식을 취하던 곳

 

 

읍취헌(挹翠軒), 풍경을 조망하며 휴식을 하던 정자

 

 

 

의두헌(依斗軒)

 

 

 

육의정(六宜亭)

 

 

황간발(篁間茇), 대나무 숲의 작은 정자

 

 

내아(內衙), 통제사의 살림집

 

 

 

우후군 영역 

통제사의 참모장인 우후가 업무를 보며 기거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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