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대구 달성군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

자즐보 2015. 4. 9. 09:52

 

 

두류공원 인물동산

 

 

 

시인 상화 이상화 상(詩人 尙火 李相和 像)

이상화(1901.4. 5 ~ 1943. 4. 25)는 일제 강점기시인,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이며, 교육자, 권투 선수이기도 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피신하였으며,

1921년 잡지 백조의 동인이 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가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이후 시와 소설 등

작품활동과 평론활동, 개벽, 문예운동, 여명,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조선문단,

조선지광 등에 동인 활동을 하였다.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서 교남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38년에는 교남학교 권투부를 창설, 지도하였다.(자료출처:위키백과)

 

 

 

소설가 현진건 문학비(玄鎭健 文學碑) 

현진건(1900. 8. 9 ~ 1943. 4. 25)대한제국일제 강점기 작가,

소설가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

20편의 단편소설과 7편의 중·장편소설을 남겼다. 일제 지배하의 민족의 수난적

운명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 묘사를 지향한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꼽힌다.(자료출처:위키백과)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상(愛國志士 朴喜光 先生 像)

박희광(1901.2.15 ~1970.1.22)은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오동진 선생 휘하에서 제5중대 중대원으로 만철연선 일본군경 공격작전등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3인조 암살단이라는 별명으로

암살 특공대를 조직하고, 일본 총영사관 파괴, 친일파 및 고관 암살과 관공서 테러,

교란작전 등의 비정규전 특수임무를 수행했으며 항일 독립운동단체와

임시정부에 무기와 자금 조달을 담당 했었다.(자료출처:위키백과)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기념탑

대구사범학교 재학생인 박효준 등 35명이 1941년 2월 항일결사 모임을

조직하여 일제식민통치에 반대하는 항일투쟁을 전개한 공훈을 기리고,

옥중에서 순국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운영 조기홍 지사 상(雲影 趙氣紅 志士 像)

조기홍 (1883. 7.24 ~ 1945.8.2)  1910년 제국주의 일본에게 나라를 강점당하자

이에 비분강개하여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랠 길 없어 항일 독립전선에

헌신하기로 맹세하고 동지를 규합했다.

 1919년 서울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8일 대구 큰 장날

이만집 목사 지휘아래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시민들에게 자주독립정신을 일깨우며  항일 독립운동으로 수감된

많은 애국지사 가족의 어려운 생활을 도와준 것이 왜경에게 발각되어

동지들과 피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 후 동지들을 규합하여 일인고관들의 암살과 경찰서를 비롯하여

관청 등을 폭파하기로 하고 폭탄을 제조하였으나, 왜경에게 탐지되어

동지들 13명과 함께 폭탄암살음모사건으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다.

 

 

 

애국지사 백산 우재룡 선생 상(愛國志士 白山 禹在龍 先生 像)

1903년 대한제국 육군에 입대해 참교로 근무중 1906년 동료들이 

일본군에 체포된 것을 계기로 탈영해 청송(靑松)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1907년 정용기의 의진에 참여해 청하읍을 공격하는 등 항쟁을 전개했다.

영일·영천 등지에서 활약하며 1908년 대구에 잠입하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 1911년 출옥했다. 1915년 7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담해 국내 및 만주 등지의 연락책임을 맡고 활동했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조직이 거의 파괴당하자 재조직에 주력하다가 1920년

군산에서 체포되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감형되어 1937년 출옥했다.

8·15해방 뒤 대한광복회를 재건하여 활동했다. (자료출처:백과사전)

 

 

 

화가 이인성 상(李仁星 像)

이인성 (1912년 ~ 1950년)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

그는 1929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열린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했다.

1930년에는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기도 하였다.

1945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1946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고,

1949년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수채화에서 날카로운 지적인 특성을 보였으며

독자적인 강한 개성으로 한국의 풍토적인 감각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가을의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 등이 있다.(자료출처:위키백과)

 

 

한시인 만포 최양해 상(漢詩人 晩圃 崔穰海 像)

최양해(1897 ~ 1978.9)는 일제강점기에 3.1운동 참가,

창씨개명 반대 운동 등으로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고,

광복 후에는 대구영남 시우회 활동으로 한시 260여 편이 있다.

 

 

 

목우 백기만 시비(牧牛 白基萬 詩碑)

백기만(1902. 5. 12 ~ 1966. 8. 7)은 대한민국시인, 문학평론가이다.

 1923년 문예지〈금성>에 꿈의 예찬, 내 살림, 기쁨 등의 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1926년 이후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그는 친구인 이상화(李相和)와 함께 대구에서 3·1운동 당시

대구 학생들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는 등 항일저항 활동을 하였다.(자료출처:위키백과)

 

 

2 · 28 학생의거기념탑(學生義擧紀念塔)

이 탑은 1960.2.28 대구학생의거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90년 2월 28일 두류공원 내에 건립한 것이다.

 

2.28학생의거는 1960년 2월 28일(일요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대구 선거유세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당시 자유당 정권은 유세방해를 목적으로 일요일인데도 공장들을 가동토록 했고

초중고등학생들을 등교하도록 강요했다. 이러한 처사에 학생들이 본노하여

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등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결의하여

①민주주의를 살리자 ②학원의 자유를 달라  ③학생들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내 중심가로 행진했다. 시위가 확산되자 경찰이 출동하여

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하고며 해산시켰다. 경찰은 주동학생 30여 명을 연행했지만

민심동요와 시위확산을 우려하여 모두 석방하였으나, 결국 이 학생의거는

마산부정선거 반대시위와 나아가 4.19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다.    

 

 

 

e월드 입구 & 83타워

 

 

 

 

두류공원 성당못 & 부용정

성당못 일대를 옛날에는 성댕이, 상댕이라고 불리다가 1910년부터

성당동이라고 불렸는데, 동네 이름을 따서 예부터 성당못이라고 했다.

이곳 성당못이 있던 자리는 조선 중엽 채씨 성을 가진 판서가 살던 집터였는데,

국풍(나라에서 지정한 공인 풍수가)이 이곳을 지나다 보니 그 자리가

아주 명당이라 장차 임금이 태어날 명당이라고 해서 나라에서

집을 짓지 못하도록 하고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자료출처:위키백과)

 

 

 

 

 

 

 

푸시킨 "삶" 시비

 

 

 

 

 

대구수목원

 

 

 

 

 

부겐베리아의 원산지는 브라질이며, 붉은색 잎은 꽃받침이고

조그마이 하얀색 3개가 꽃이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청아한 모습과 그윽한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 얽힌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미소년 나르시소스는 어떤 요정의 유혹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를 시기한 복수의 여신이 나르시소스를 자기 자신만  

사랑하도록 만들어 버렸다.그때부터 그는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졌고, 결국 사랑을 쫓아 샘안에 몸을  

던지고 만다.그가 죽은 후에 샘주변에는 나르시소스의 혼이  

한 송이 수선화로 피어났다고 한다.

때문에 '자만', '자존심'등의 꽃말이 붙어 있지만 '고결'한 꽃이다.

 

 

 

 

깽깽이풀은 꽃이 예쁘고 약재로 이용하기 위해

채취가 극심하여 산림청 선정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1997)로

환경부 특정식물종 5등급에 분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