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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농산리 석불입상

자즐보 2014. 8. 24. 22:43

 

 

 

거창 농산리 석불입상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소

 

이 불상은 광배와 받침대를 모두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석불이다.

바위를 원추형으로 쪼아서 불상과 광배를 하나의 돌에 조각하였다. 머리 부분의

상투모양은 높고 뚜렷하게 표현하였고, 알맞은 이목구비를 갖춘 둥근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당당한 가슴과 함께 부드러운 경사를 이룬 유연한 어깨,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드러난 사실적인 몸매는

불상의 뛰어난 입체감을 더해 준다. 여기에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가슴위로 몇 갈래의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다가 허리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 살짝 밀착되어 작은 U자를 그렸다가,

종아리 부분에서 큰 V자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자락의 표현법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 형식이라 부른다.

그 유래는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한 때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는데, 그때 밧사(Batsa) 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가

잠시라도 지상에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150㎝ 크기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불상이 최초의 부처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 여래상의 옷자락의 조각 형식이 이 석조여래상과 같은 형태였다고 한다.

이 같은 옷자락의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몸 전체를 감싼 광배에는 불꽃무늬를 새겼고,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받침대는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는 통일신라 700년 전후 추정의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사암제불입상을 비롯하여 719년 경 감산사상, 730년~760년 경 추정의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면 불입상 등 8세기 이후 상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두 발은 불신과 별도로 대석 위에 조각되어 있는데 마멸과 손상이 심하여

왼쪽 발가락 일부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측 상단부가 깨어져 나간 광배는

불신과 한 돌로 이루어진 배 모양의 주형거신광으로 어느 정도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으나 화염문 등 구체적인 문양 표현은 알 수 없다.

비록 부분적인 파손이 있으나 이 불상은 야산의 구릉에서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귀중한 불상으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정제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예가 많지 않은 점에서 가치가 있다.(자료출처:거창 문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