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대견사(
비슬산 대견사는 우리 역사의 굴곡과 운명을 함께 한 절로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이 흥한다는 산천비보사상에 따라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된 절이었다.
조선 태종 2년(1402)에 중창했고, 태종 16년(1416)과 세종 5년(1423)에
'이 절의 장육관음석상이 땀을 흘렸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있다.
애석하게도 임진왜란 때는 낙동강을 타고 북상하던 왜군에 의해 불탔고,
이후 1900년 다시 대한제국의 융성을 위해 대견사를 중수하였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폐사되었다.
대견사 대웅전이 일본 쪽으로 바라보고 있어 대마도를 끌어당기고,
일본의 기세를 꺾는다는 이유에서 였다.
대견사는 일연스님이 오래 주지로 있었던 절이다.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은 9살 때 출가해 20살 때 승과시험에 장원하고
비슬산 보당암(대견사의 옛이름)에 들어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일연이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편찬했지만 그의 사상의 형성과
집필 준비는 대견사 초대 주지로 머문 22년 동안 이뤄졌다.
이처럼 역사의 곡절이 깊은 대견사가 폐사 당시의 원형을 최대한 복원하여
2014년 3월 1일 삼일절에 개산식을 열어 일반인들에 공개되었다.
일설에는,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바로 이 절터였으며, 이 터가 대국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비슬산 산정부(해발 1000m)에 있는
대견사 & 삼층석탑으로 내려가는 암석 사이길
내려가기 전 암석위에서 삼층석탑을 담았다.
내려와서 본 암석군, 각종 형상을 닮은 바위를 학술용어로 토르(Tor)라고 한다.
대견사(
2014년 3월 1일 복원한 대견사, 아직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견보궁(大見寶宮)
암석이 굴러 떨어질 듯 위태로이 보이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를 저렇게 버텨 왔단다.
강우관측레이더가 보이는 조화봉
대견사 마애불
연화좌대, 옛 대견사의 부재인 듯...
대견사 삼층석탑
하늘의 기운과 땅의 정기가 맞닿는
이 높은 벼랑위에 당당히 서있는 석탑, 경이로움...
기(氣) 바위
참선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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