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여행*문화탐방/대구 달성군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자즐보 2014. 7. 7. 21:00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대한불교조계종 경북 5대 본산 중의 하나이자 제9교구 본사이다. 

동화사 사적비(1931년)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유가사(瑜伽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것을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 심지조사(心地祖師)가 중창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동화사라는 이름은 중창할 당시,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상서로운 징조로 여긴

심지조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국유사(13세기)에는 진표(眞表)로부터 불골간자를 이어받은

영심(永深)이 다시 심지조사에게 간자 두 개를 전했고, 심지조사가

그것을 봉안할 땅을 찾고자, 중악(中岳)의 두 신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

서쪽을 향해 던지니 간자가 곧 바람에 날려 날아갔고, 간자가 떨어진 곳이

동화사 참당(籤堂)의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었다. 그리고 심지조사는

그곳에 강당을 지어 간자를 봉안했다고 한다.

 

동화문(桐華門)

 

 

 

 

 

동화사 안내도

 

 

 

 

인악대사 나무(보호수)

 

 

 

 

 

용호문(사천왕문)

 

 

 

 

설법전(說法殿)

1990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 불사 때 지은 설법전은

각종 법회와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곳이며, 지하에는 공양간이 있다.

 

 

 

 

통일범종루(統一梵鐘樓)

 

 

 

 

원음각(圓音閣)

원음각은 절에서 의식이나 행사, 법회를 행할 때 사용하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봉서루 전경

 

 

 

봉서루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기와불사 접수처, 범종루, 원음각

 

 

 

 

육화당(六和堂)

종무소 및 접수처, 봉서루 들어가기 전 좌측에 위치

 

 

 

봉서루(鳳棲樓)
동화사가 자리한 곳은 풍수지리에서 '봉황이 알을 품은 지세(鳳巢抱卵)'라 한다. 
봉서루는 동화사의 누문(樓門)으로 '봉황이 깃든 누각'이란 뜻이다.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을 세운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영남도총섭(嶺南都摠攝)으로 동화사에서 승병(치병)을 지휘했던 연고에 따라
봉서루 안에는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는 널찍한 자연석이 하나 놓여 있는데
흔히 이 부분을 '봉황의 꼬리'라 부르며,  세개의 둥근 돌은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안에서 본 봉서루,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563호)
세조(世祖) 10년(1465년)에 수리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존하는 대웅전 건물은 선조 39년(1606년)에 학인에 의해 세워진 것을
숙종 3년(1677년)에 한 번 수리하였고, 최종적으로 영조 3년(1727년)에서
영조 8년(1732년) 사이에 수리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헌종 4년(1838년)에
다시 수리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축대 아래 양쪽에는 한 쌍의 괘불대와 노주가 있고,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는
정면에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대웅전 내부 불단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또 천장에는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화엄당(華嚴堂)

대웅전 앞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원으로 사용된다.

 

 

 

 

법화당(法華堂)

대웅전 앞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영산전(靈山殿)
영산전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대웅전 동편 뒤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채에 위치해 있으며,
내부에는 불경의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여 석조 석가삼존불을 중심으로
십육나한상이 좌우로 열좌해 있다. 현판 글씨는 서예가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다.
맞배지붕에 겹처마 형식의 건축 양식을 갖춘 현재의 영산전은
현종 10년(1669년)에 학찬(學贊)이 세웠던 것을 1920년 중건하였다.

 

 

 

석탑(石塔)

 

 

 

산신각(山神閣)

산신을 모셔 놓은 당우로 한국 불교 안에 토착신앙을 수용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조사전(祖師殿)
동화사를 거쳐간 역대 고승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대웅전 뒤편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18세기 건물이다.
동화사를 처음 세웠다는 극달화상과 중창조 보조국사,
사명대사 등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각(七星閣)

대웅전 서편 뒤 맨 위쪽에 위치해 있는 칠성각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전각이다.

칠성은 수명장수신으로 가람 수호신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칠성각 안에는 철종 8년(1857)에 그려진 삼존 형식의 칠성탱이 있다.

 

 

 

심검당(尋劒堂)
심검당이라는 이름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참선이나 불경 강설용으로 쓰이는 건물에 주로 붙이는 이름이다.
동화사 심검당은 조선 선조 38년(1605년)에 천령(天靈)에 의해 지어졌다.
1919년 3.30 대구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영남 지방학림의 승려 아홉 명이
당시 만세운동 계획을 결의하고 수립했던 장소이다. 현재의 건물은
1978년에 중건된 것으로 승려들의 주거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서별당(西別堂)

심검당 뒤 서쪽으로 약간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인다.

 

 

 

해탈교(解脫橋)

 

 

 

 

 

 

 

 

 

동화사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254호)

 

 

 

 

인악당(仁岳堂)

조선 시대 고승 인악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각이다.

인악대사비는 귀부를 거북으로 하지 않고 봉황으로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1808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안동김씨 희순이 짓고 썼다.

뒤쪽에는 부도전이 있다.

 

 

 

 

통일대불 및 성보박물관 가는 길

 

 

 

성보박물관(1층), 통일기원대전(2층)

 

 

 

 

 

 

통일기원대전(統一祈願大殿)

 

 

 

 

 

 

통일대불(統一大佛)

1992년 11월 27일 점안 대법회를 하였으며, 높이 17m 둘레16.5m이다.

 

 

 

 

대불 앞 좌.우 석탑도 높이 17m이다.

 

 

 

 

 

불교문화관